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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초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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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초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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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초간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예천 초간정
영문명칭 0
한자 醴泉 草澗亭
주소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용문경천로 874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5호
지정(등록)일 2013년 4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예천 초간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초간 권문해(草澗 權文海, 1534∼1591)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심신(心身)의 수양을 위해 세운 정자이다. 권문해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대구부자, 좌승지 등을 지냈고,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지은 인물이다.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워진 초간정은 1592년에 화재로 불탔다. 권문해의 아들 권별(權鼈)이 인조 4년(1626)다시 지었으나, 인조 14년(1636)에 다시 불탔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영조 15년(1739)에 권문해의 현손(玄孫)*인 권봉의(權鳳儀)가 원래의 터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초간정사’라는 현판은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의 글로, 정자에 여러 차례 화재가 나면서 잃어버렸다가 훗날 다시 발견하였는데, 정자 앞 늪에서 영롱한 빛이 보여 파보았더니 현판이 묻혀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자는 암반 위에 돌을 쌓아 만든 축대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졌다. 정면의 왼쪽 두 칸은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나머지는 대청마루로 사면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양식이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진 초간정은 현재 관광지,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다.


  • 현손: 증손자의 아들. 또는 손자의 손자. ≒ 고손
    • 작지붕: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지붕

영문

This pavilion was established in 1582 by Gwon Mun-hae (1534-1591),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Gwon Mun-hae was a pupil of Yi Hwang (1501-1570), a renowned Neo-Confucian Scholar in Korea.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nd compiled the Encyclopedia of Korea Arranged by the Rhymes of the Entries, which is the first encyclopedic work in Korea.

The original pavilion burned down in 1592. In 1626, Gwon Mun-hae’s son, Gwon Byeol, rebuilt it but it again burned down in 1636. The current building was reconstructed in 1739 by Gwon Bong-ui, the fourth generation descendant of Gwon Mun-hae. It is situated a little westward from the original site, on the stone foundation built atop the natural rocks. It consists of two underfloor-heated rooms in the front, and a wooden-floored hall in the rear surrounded by wooden verandas in all four directions.

The wooden plaque bearing its name, “Choganjeongsa Pavilion,” was written by Bak Seung-im. It is said the plaque had once been lost during the fires in the past, but was discovered later.

영문 해설 내용

초간정은 조선 시대의 문신 권문해 (1534-1591, 호:초간)가 은퇴한 뒤 1582년에 세웠다.

권문해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했다.

원래의 건물은 1592년에 화재로 불탔다. 권문해의 아들 권별이 1626년에 다시 지었으나, 1636년에 다시 불탔다. 현재 건물은 1739년에 권문해의 4대손 권봉의가 원래의 터에서 약간 서쪽으로 옮겨 지은 것이다. 암반 위에 돌을 쌓아 만든 축대 위에 세웠으며 정면의 왼쪽 두 칸은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나머지 뒷면은 대청마루이며, 사면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초간정사’라는 현판은 박승임이 썼으며, 정자에 여러 차례 화재가 나면서 잃어버렸다가 훗날 다시 발견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정자 앞 늪에서 영롱한 빛이 보여 파보았더니 현판이 묻혀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