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경주 황룡사지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21일 (일) 10:10 판 (영문)

이동: 둘러보기, 검색


경주 황룡사지
Hwangnyongsa Temple Site, Gyeongju
경주 황룡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황룡사지
영문명칭 Hwangnyongsa Temple Site, Gyeongju
한자 慶州 皇龍寺址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20-2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6호
지정(등록)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시대 신라
수량/면적 390,418㎡
웹사이트 경주 황룡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황룡사는 경주 중심부에 위치한 신라 최대의 사찰이다. 진흥왕 14년(553) 월성 동북쪽에 궁궐을 조성하다가 황룡이 나타나 사찰로 고쳐지었다. 그 후 장육존상을 봉안하기 위한 금당을 다시 짓고, 선덕여왕(善德女王) 14년(645)에 구층목탑을 건립하기까지 93년에 걸친 대규모 국가사업으로 완성된 사찰이다.

황룡사는 중문과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놓이고 금당 좌우에 작은 금당, 탑 좌우에 경루와 종루를 대칭으로 배치하고 주위 사방을 회랑으로 둘렀다. 금당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조성하려다 이루지 못하고 배에 실어 보낸 황철과 황금으로 만든 금동삼존불을 모시기 위해 진평왕 6년(584)에 새로 지어졌다. 또 선덕여왕 12년(643)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이 신라의 위용을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구층탑을 세워 외적 침입을 막자는 건의에 따라 백제 기술자인 아비지(阿非知)를 불러 공사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황룡사 구층목탑을 완공하였다. 경덕왕대(742~765) 재위에는 황룡사 대종이 완성되었다. 구층목탑은 낙뢰(落雷)같은 사고가 있을 때마다 고쳐지어졌지만, 고려 고종 25년(1238) 몽골 침입 때 황룡사와 함께 소실되었다.

신라삼보(新羅三寶)* 가운데 두 개가 황룡사에 있을 만큼 황룡사는 신라를 상징하는 큰 사찰이었다. 관리 관부인 성전(成典)*을 설치하여 국가관리 사찰로, 호국사찰로 위상이 높았다.

1976년부터 8년간의 발굴조사 결과, 원래 늪지대를 메워 절터를 만들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4만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유물 가운데 높이 182cm의 대형 치미는 황룡사 건축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 신라삼보(新羅三寶): 신라 왕실의 권위와 호국을 상징하는 세 가지 보물. 진평왕의 천사옥대(天賜玉帶,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허리띠), 진흥왕대의 황룡사 장육존상(丈六尊像, 1장6척 크기의 불상), 선덕여왕대의 황룡사 구층목탑
  • 성전(成典): 신라시대 왕실의 사원을 관리하는 관청의 명칭.
  • 치미(鴟尾): 고대의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

영문

Hwangnyongsa Temple Site, Gyeongju

This is the former site of Hwangnyonsa Temple, which was the largest Buddhist temple built by the Silla kingdom (57BCE-935) and stood in the central area of Silla’s capital Seorabeol*. (The name of the temple means the “temple of the Emperor Dragon”.)

It is said that in 553, the Emperor Dragon** appeared at this very spot during the ongoing construction of a palace. The king then took it as a sign to change the plan of the construction and to build a temple here instead. The construction of this temple turned into a massive-scale national project which took 93 years to complete. The nine-story wooden pagoda, which was by far the largest building in the temple, was finished in 645***. The buddha statues enshrined in this pagoda as well as in the main worship hall were regarded as the treasures symbolizing the king’s authority and protectorship of the kingdom, while the temple itself was given an important role of protecting the welfare of the state so that the king personally attended the ceremonies held here. The temple retained its important status even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but was eventually burned down in 1238 during the Mongol invasions (1231-1259).

Over the years, the temple’s site became occupied by private houses and fields. In the 1970s, research of the area was started, and from 1976 to 1983, a thorough excavation was conducted, revealing that the temple was built on a swampy terrain that had been previously filled up and drained. A total of over 40,000 pieces of various artifacts were unearthed on the site including gilt-bronze statue(s), roof-end wind chimes, gilt-bronze earings, glass (and roof tile) shards, etc. A particularly significant find was an enormous ridge-end tile which measured 182 cm in height and 105 cm in width, showing the massive scale of the temple. The original structure of the temple was divided into north and south sections and included a main gate, a wooden pagoda, Geumdang Hall, and a lecture hall. However, in the following years, the temple underwent three major expansions. Firstly, two smaller/auxiliary worship halls were built to the left and right of the Geumdang Hall. Secondly, the pagoda was flanked by two pavilions, one of which housed the bell and the other served as a repository for the Buddhist scripts. And finally, the whole complex was encircled by a cloister(?).


  • I guess technically it’s not correct to say it was built in Gyeongju.
    • The name of the temple is 皇龍寺 but im not sure there is such thing as 皇龍(Emperor Dragon). Could it be just the Yellow Dragon?
    • HW: in the central area of Silla’s capital Seorabeol <- 이렇게 쓴 거 좋아요. 그리고 Yellow Dragon (黃龍)이 나타난 것이고.. Yellow was the emeperor's color in ancient China, so the temple's name came to be called 皇龍
  • 553+93=646, not 645
    • HW: 완공된 해는 645년. 93년 얘기를 뺍시다.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경주 중심부에 창건되었던 신라 최대의 사찰 황룡사의 옛 터이다.

553년 이곳에 신라의 궁궐을 조성하던 중 황룡이 나타났고, 이에 왕이 계획을 바꾸어 사찰로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93년에 걸친 대규모의 국가사업으로 사찰이 건립되었고, 645년 금당 앞에 9층 목탑을 세우면서 완공되었다. 이 목탑과 황룡사 금당(main worship hall)에 모셔졌던 불상은 신라 왕실의 권위와 호국을 상징하는 보물로 여겨졌으며, 국왕이 직접 참석하는 법회를 주관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가진 호국사찰이었다. 고려시대까지 사세가 이어졌으나, 1238년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졌다.

황룡사지는 폐사 이후 민가와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1976년부터 8년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늪지대를 메워 절터를 만들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도 금동불입상, 풍탁, 금동귀걸이, 각종 유리 조각 등 4만여 점에 이른다. 특히 높이 182cm, 최대 너비 105cm의 대형 치미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황룡사 건물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황룡사는 원래 정문, 목탑, 금당, 강당(lecture hall)이 남북으로 일렬로 배치된 형태였는데, 나중에 금당 양옆에 작은 금당(worship hall)을 하나씩 더 짓고 목탑 좌우에 종을 달아두는 누각과 경전을 보관하는 누각을 하나씩 더 지었다. 전체 영역은 회랑으로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