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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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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20일 (토) 05:3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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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객사
Guesthouse of the Sunchang Local Government
순창객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순창객사
영문명칭 Guesthouse of the Sunchang Local Government
한자 淳昌客舍
주소 전라북도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지정(등록)일 1974년 9월 27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순창객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객사는 조선시대에 관청의 손님이나 사신이 머물던 곳이다.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는 정당(正堂)과 숙소로 사용하던 익실로 이루어져 있다. 새로 부임한 수령은 반드시 객사에 와서 참배를 해야 했으며,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나라의 국상(國喪) 등 큰 일이 있을 때에도 궁궐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

순창객사가 처음 지어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영조 35년(1759)에 중건되었다. 원래는 가운데 정당을 중심으로 양옆에 대청이 있었는데, 오른쪽 동대청은 없어졌다. 일제강점기 이후 다른 용도의 건물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 초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춰 나가기 시작하였으며, 2010년대까지 여러 차례 주변 정비사업을 실시하였다.

고종 42년(1905)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崔益鉉, 1833∼1906)과 임병찬(林炳瓚, 1851∼1916)이 이곳에서 진을 치고 항일 의병본부로 사용하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히기도 하였다.

왼쪽 서대청에는 2014년에 새롭게 마련한 ‘옥천지관(玉川之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옥천은 마한시대 순창의 지명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순창의 옛 이름이다.

영문

Guesthouse of the Sunchang Local Government


영문 해설 내용

객사는 조선시대에 고을 관아에 설치했다. 객사는 가운데에 왕의 전패를 모신 정당이 있고 좌우 양쪽에 숙소로 사용되던 익실이 있다. 객사에 모셔진 전패는 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권을 바탕으로 고을 수령과 관리들은 궁궐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를 행했다.

순창객사가 처음 지어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59년에 중건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킨 임병찬(1851~1916)이 이곳에서 진을 치고 일본군에 맞서 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문신이자 유학자였던 최익현(1833~1906)이 의병장으로서 이곳을 항일 의병 본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다른 용도의 건물로 사용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80년대 초부터 2010년대까지 여러 차례 보수된 것이다.

지금은 두 익실 중 왼쪽의 것만 남아 있다. 2014년에 새롭게 만든‘옥천지관(옥천의 객사)’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옥천은 순창 지역의 옛 이름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