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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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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
송정 (정읍),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송정
한자 松亭
주소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산4번지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지정(등록)일 1990년 6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송정 (정읍),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송정은 조선시대 광해군의 폭정을 바로잡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들이 시를 읊으며 세월을 보내던 곳이다. 사람들은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 모여 유유자적하던 이들 선비를 가리켜 7광(狂)․10현(賢)이라 일컬었다.

7광은 김대립․김응빈․김감․송치중․송민고․이상형․이탁을 지칭한다. 10현은 김응빈․김감․송치중․송민고․이탁 외에 김관․김정․김급․김우직․양몽우 등을 가리킨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조선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낙향한 선비들이 모여 시를 지어 읊으며 세월을 보내던 곳이다.

광해군은 1618년 자신의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위하고 서궁에 감금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스스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선비들은 고사에 빗대어 자신들을 ‘7광(狂)’이라 불렀으며, 후대인들은 인물의 출입을 거쳐 ‘10현(賢)’이라 불렀다.

17세기에 건립된 정자는 사방에 난간이 없는 마루를 두르고, 중앙에는 난방이 가능한 작은 방을 두었으며, 19세기에 후손들에 의해 중수되었다고 한다.

정자의 이름은 소나무의 절개를 비유한 것이다.

정자 위쪽에는 이들의 후손들이 1899년에 세운 영당 건물이 있다. 영모정이라는 이름의 영당에는 1910년 그려진 칠광도와 송정십현도가 봉안되어 있다. 후손들은 조상들의 뜻을 기려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 7광(七狂)은 '초광(楚狂)의 노래'라는 고사와 연계된다. 초광(楚狂)은 춘추시대 초(楚)나라 은자(隱者)인 육통(陸通)을 이른다. 그는 거짓으로 미친 것처럼 하고 벼슬하지 않아 후대에는 세상에 벼슬하러 나가지 않고 은거하는 이를 대표하게 되었다. 7광(七狂)은 세상이 너무 어지러우니 마치 미친 사람처럼 세상을 등지고 살면서 지조를 지키겠다는 뜻에서 자신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으로, 김대립, 김응빈, 김감, 송치중, 송민고, 이상형, 이탁 7명이다. / 10현은 후대인이 부르는 이름으로, 칠광 중에서 김대립, 김응빈이 빠지고 김관, 김정, 김급, 김우직, 양몽우의 다섯이 더해진다.
  • 순조대(純祖代)에 후손들이 구계(舊契)를 보수하고, 이어 정자를 중수하였고, 이곳에서 설과사시사(設課試士)하여 향토의 문풍(文風)을 높혔다.
  • 송정 안에는 관찰사(觀察使) 서상정(徐相鼎) 김환풍(金煥豊)이 지은 송정중수기(松亭重修記)와 중수유사 (重修有司) 김영돈(金永敦), 김환종(金煥琮), 송영조(宋榮祚)가 지은 중수기 등 많은 편액과 주련이 걸려있다. 읍지에도 기문과 시들이 전한다.
  • 송정중수기에 “정자 이름을 송정이라 함은 솔의 절개를 비유함이다. 십현의 사적은 옛날 사람이 기록하여 알 수 있지만, 정자의 건축이 그 당시였는지 그 뒷일인지 알 수가 없다. .... 후세에 중문과 축대, 정문길, 담장, 집처마를 고치고 주위에 화초 나무를 심고 돌을 쌓고 흙을 돋았다."고 적고 있다.
  • 영모당(일명 송정영당)은 1899년 후손들이 지어 칠광도(七狂圖)와 송정십현도(松亭十賢圖)를 봉안했다. 칠광도와 송정십현도는 1910년 석지 채용신(1850~1941)이 그렸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