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만대루(안동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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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만대루는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이다. 200여 명을 수용하고도 남음직한 장대함이 누각에는 다른 서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면이 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난간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깍아 만든 계단, 굽이도는 강물의 형상을 닮은 대들보의 모습은 건출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만대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중 ‘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그 이름처럼 해질 무렵에 2층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는 이곳의 경치 중 으뜸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휴식과 강학을 위한 공간으로 건립되었다. 제사나 서원에서 행사를 시작할 때 개회를 알리거나 폐회를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드물게 연회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만대루의 이름은 당나라 두보의 시인 “백제성루(白帝城樓)”에서 구절을 따왔다. 이 시에 “푸른 병풍을 두른 듯한 산은 마땅히 저녁 늦도록 마주해야 할 것이고[翠屛宜晩對]”란 구절이 있다.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이 구절과 똑 닮았다. 병풍을 두른듯한 산의 절경이 눈앞에 보인다. 서원 이름인 병산(屛山)의 병풍도 이 구절에 들어있다. 일설에는 송나라 주희(朱喜)가 건립한 무이정사(武夷精舍)의 만대정(晩對亭)에서 이름을 빌린 것이라고도 한다.

만대루는 목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여 휘어진 모습 그대로 누각을 받치고 있다. 장식과 기교도 없이 꼭 필요한 요소만을 두어 건축했다.

1차 수정

만대루는 휴식과 강학을 위한 공간이다. 서원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행사를 할 때 개·폐회를 알리는 곳이기도 하고, 드물게 연회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만대’라는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백제성루(白帝城樓)’ 중 “푸른 절벽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실제로 저녁 무렵 만대루에서 오르면 병풍을 두른듯한 산과 낙동강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만대루는 목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장식과 기교도 없이 꼭 필요한 요소만을 두어 건축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등은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한국 전통 건축의 빼어난 멋을 그대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