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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동 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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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동 사지
Temple Site in Bomun-dong, Gyeongju
경주 보문동 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보문동 사지
영문명칭 Temple Site in Bomun-dong, Gyeongju
한자 慶州 普門洞 寺址
주소 경북 경주시 보문동 848-6번지 외
국가유산 종목 사적 제390호
지정(등록)일 1994년 12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89,897㎡
웹사이트 경주 보문동 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보문(普門)' 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절 이름이 보문사였음을 확인하였다.

건물터와 석조물들이 남아 있지만, 절터 대부분은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금당지는 흙으로 쌓은 축대 위에 건물 기단석과 초석이 배치되어 있다. 목탑 터는 금당 앞의 높은 단 위에 있는데, 서탑지 중앙의 대형 초석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절터 서쪽에 보물 제123호 당간지주가 있고, 보물 제64호 석조(石槽), 석등 지붕돌 등의 석조물들이 주변에 남아 있다.

황룡사 구층목탑의 찰주본기(刹柱本記)에 경문왕 11년(871)에 구층목탑을 중수할 때 도감전(都監典)*으로 보문사의 상좌 승 은전(隱田)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고 883년의 중화삼년명사리기(中和三年名舍利器)에 보문사 현여대덕(玄如大德)이 소탑(小塔) 77구를 만들고 진언(眞言) 77본을 써서 대탑에 봉안하였다는 등의 단편적인 기록들이 전하고 있다.


  • 도감전(道監典): 신라 하대 불사(佛事)의 조영을 위해 승관(僧官)들로 구성된 공사감독기관.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에 있었던 보문사의 옛 터이다.

절이 창건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단편적으로 전하는 기록들을 보면, 871년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터와 석조물들이 남아 있지만, 절터 대부분이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이곳에서 일제강점기에 `보문(普門)' 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절 이름이 확인되었다.

흙으로 쌓은 축대 위에 건물 초석이 배치되어 있는 곳이 금당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다. 금당터 앞에 조성된 두 개의 단은 목탑이 세워졌던 자리로 보인다. 이중 서탑지 중앙에 연꽃이 조각된 초석이 남아있다.

절터 인근에는 석등 지붕돌과 석조 구조물(보물 제64호) 등의 여러 석물들이 남아 있으며, 서쪽에는 당간지주(보물 제123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