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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안의 광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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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안의 광풍루
함양 안의 광풍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안의 광풍루
국가유산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지정(등록)일 1974년 2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함양 안의 광풍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누각은 1412년(태종 12)에 당시 이안(利安, ‘안의’의 옛 이름) 현감이던 전우(全遇, 생몰 연대 미상)가 건립하였는데, 당시의 이름은 선화루(宣化樓)였다. 그 후, 1425년(세종 7)에 김홍의(金洪毅)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1494년(성종 25)에 안의현감이던 정여창(鄭汝昌)선생이 중건하면서 이름을 광풍루(光風樓)로 바꾸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불타는 등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풍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기둥의 주춧돌은 둥글게 깎아 만들었다. 지붕의 경사면에 처마를 하나 덧댄 팔작지붕을 연출하였으나, 처마 돌출이 작기 때문에 호방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소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함양 읍내의 학사루(學士樓)와 유사한 건축 양식이다. 광풍루는 금호강을 앞으로 하고 안의 읍내를 뒤로 하면서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 강은 하천 개발로 그 모습을 잃어버렸고, 후면에 상가와 민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겼을 풍류를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누각 위에 걸린 옛 시인의 글귀만이 옛 금호강변의 아름다운 ‘빛과 바람[光風]’의 느낌을 전해줄 뿐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누각은 1412년 안의의 옛 지명인 이안(利安)의 현감이 지은 것으로서 그 당시에는 선화루(宣化樓)라 하였다. 그 뒤 142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494년에 안의현감이던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이 중수하여 이름도 광풍루(光風樓)로 고쳐 불렀다.

광풍(光風)은 제월(霽月)과 서로 짝을 이루는데, 이것은 중국 북송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주돈이의 인품을 묘사하여 ‘광풍제월’이라 하였는데, 광풍은 ‘맑은 바람’을, 제월은 ‘비 갠 달빛’을 의미한다. 정여창은 같은 해 근처에 제월당(霽月堂)이라는 정자를 지어 광풍루와 서로 짝을 이루게 하였다.

광풍루는 이후 정유재란 때에 소실되었는데 여러 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80년에 단청을 정비하였다. 2014년에는 문화재 훼손 등의 이유로 뒤편으로 10m 정도 이건한 후 주변을 정비하였으며 2016년에는 단청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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