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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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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4월 28일 (화) 16:0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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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사직단
대표명칭 고성 사직단
한자 固成 社稷壇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296호
지정(등록)일 2019년 1월 3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수량/면적 598
웹사이트 고성 사직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고성읍 교사리에 있는 조선시대 사직단이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으로 농경사회인 조선에서 신성하게 여겼던 공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고성현에는 고성의 사직단이 “현(縣)의 서쪽에 있다.”고 했으며, 이후 조선 후기에 발행된 『고성현읍지』와 『경상도읍지』 등도 “현의 서쪽 5리에 있다.”고 기록했다. 1893~1894년 고성부사 오횡묵(吳宖默)의 일기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에는 고성부사가 사직단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의 제물과 제관, 날씨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또한 고성 사직단이 있는 교사리(校社里)의 지명은 향교가 있던 교동(校洞)과 사직단이 있던 사동(社洞)에서 온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조사결과, 동서 약 5m, 남북 약 4.2m의 제단과 이를 둘러싸는 20여m의 담장, 남쪽의 출입구 등이 확인되었다.

  • <고성신문>에 의하면 2019년 당시 복원 계획 중인데, 현재 복원 중인지 확인 필요.

1차 수정

사직단은 과거 농경사회의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나라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를 올리던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유교통치이념을 강조했던 성종이 사직을 제도화하였고, 의종 때 정비가 이루어 졌다. 조선 초 태종은 전국의 부·목·군·현의 행정단위마다 사직단을 세우고 봄과 가을에 사직제를 거행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후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3백여 개가 넘는 읍치에 사직단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것은 각 읍치의 중요 제례시설이었다. 하지만 1908년 통감부의 칙령으로 亨祀에 관한 시설이 대부분 철폐됨에 따라 폐지된다.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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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http://www.gosnews.kr/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447&idx=20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