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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평사 금동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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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평사금동여래좌상
순평사 금동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순평사금동여래좌상
한자 淳平寺金銅如來坐像
주소 전라북도
국가유산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5호
지정(등록)일 1998년 11월 27일
분류 유물/불교조각/금속조/불상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軀
웹사이트 순평사 금동여래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불상은 원래 전북 남원의 어떤 사찰에 있었다가 현재는 순평사의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조각기법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받침대나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머리 뒤의 장식인 광배(光背)는 남아 있지 않다. 작고 꼭 다문 입에서 매우 근엄한 인상이 풍기는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자세가 안정되어 있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굴과 상체가 유난히 길게 표현된 점이 특징이다. 불상 아래 부분에서 발견된 함(函)에는, 불상을 조성할 때 넣은 유물들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은 1946년에 넣은 불경과 은제장신구 등이 들어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불상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는 남원의 한 사찰에 모셔져 있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 담양군의 개인에게 옮겨 간 것을 장성군에 있는 백양사의 포교당에서 거의 완파 직전의 불상을 수습하였다. 이후 1973년에 중수하여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하였고, 1995년 순평사에 대웅전을 지으면서 옮겨오게 된 것이다.

불상의 받침대나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머리 뒤의 장식인 광배(光背)는 남아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자세가 안정되어 있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굴과 상체가 유난히 길게 표현된 점이 특징이다.

불상 아랫부분에서 유물을 넣어 두는 함이 발견되었는데, 불상을 처음 만들 때 넣은 유물은 모두 없어졌고, 지금은 1946년에 넣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석고 불상 두 구, 은제 장신구, 발원문이 쓰인 깃발 모양의 번(幡), 1936년에 비단에 쓴 원문(願文) 및 보협 다라니, 복장 상자 등이 있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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