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구니서당
창녕 구니서당 Guniseodang Village Study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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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창녕 구니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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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uniseodang Village Study Hall |
한자 | 昌寧 求尼書堂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가상리 1160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9호 |
지정(등록)일 | 1998년 1월 15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창녕 구니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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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서당은 현재의 초등학교 수준의 사설 교육기관이다.
창녕 구니서당은 조선전기 성리학자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의 후손들이 조상을 받들기 위해 세운 건물로, 제를 지내거나 서당으로 사용하였다. 고종 3년(1866)에는 김굉필의 둘째 아들인 언상공(彦庠公)을 비롯한 4명의 위패를 모시고 서원으로 지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구니서당은 지붕의 내림마루*를 2단으로 쌓은 것과 용마루** 끝 부분을 귀신 얼굴을 그린 장식기와로 만든 점이 색다르다. 지금의 정당은 1916년에 규모를 넓혀 지은 것으로 경내에는 사당, 동재, 서재, 문루, 관리사 등이 있다.
- 내림마루 : 용마루에서 추녀마루를 잇는 부분
- 용마루 : 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영문
Guniseodang Village Study Hall
Guniseodang Village Study Hall was established by the descendants of Kim Goeng-pil (1454-1504), a Confucian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with the purpose of honoring the ancestors and teaching the descendants of the family clan.
After Kim Goeng-pil passed the classics licentiate examination in 1480, he gained recognition for his excellent intellect and character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498, he was exiled to Pyeongan-do Province, and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04, he was sentenced to death. His honor was posthumously restored and he was promoted to third state councilor. Many of his disciples went on to become influential scholars of neo-Confucian.
After Kim Goeng-pil was exiled, his second son Kim Eon-sang (1480-1540) moved to the Goam area together with the rest of the family. Kim Eon-sang was thus the first person from the Seoheung Kim clan to settle in this area, where this study hall is located.
The study hall is presumed to have been established in the late 17th century. In 1866, a shrine was added to enshrining the spirit tablets of Kim Goeng-pil, Kim Eon-sang (1480-1540), Kim Eon-sang’s son Kim Rip (1497-1583), Kim Rip’s sons Kim Su-gae (1528-?) and Kim Su-hoe. Just two years later, in 1868, the complex was demolished following a nationwide decree to shut down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The study hall and shrine were rebuilt in 1916 and 1943, respectively. In 1980, the complex was renovated, and other auxiliary buildings were added.
영문 해설 내용
구니서당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 김굉필(1454-1504)의 후손들이 조상을 기리고 문중의 자손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웠다.
김굉필은 1480년 생원시에 급제한 후, 뛰어난 학식과 인품을 인정 받아 벼슬길에 나아갔다. 1498년 사화 때 평안도로 유배되었으며, 1504년 사화 때 극형에 처해졌다. 이후 신원되었으며, 1517년에는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김굉필의 제자들이 이후 조선 사림의 주축을 형성하였으며, 김굉필은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언상은 서당이 위치한 고암 지역의 서흥김씨 입향조이다. 1498년 아버지가 유배되었을 때 가족들과 함께 고암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구니서당은 17세기 후반 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1866년에는 김굉필, 김굉필의 둘째 아들 김언상(1480-1540), 김언상의 아들 김립(1497-1583), 김립의 아들 김수개(1528-?)와 김수회의 위패를 모시고 서원이 되었다.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16년에 다시 지었다. 현재 경내에는 강당, 사당과 부속건물들이 있다. 사당은 1943년에 다시 지었고, 1980년대에 중수하면서 부속건물들을 함께 지었다.
참고 자료
- 경남신문, 2013.2.5. 기사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60506 - 서원 있는 마을은 서흥 김씨 집성촌. *https://blog.naver.com/kobic/221210129627 - 실제 사진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31,02490000,38&pageNo=1_1_1_0#
- 김언상(1480- 1540) : 창녕군내 서흥김씨의 入昌祖, 한훤당 김굉필의 아들, 무오사화(연산4년: 1498)때 그 가족이 고암으로 피신하였으며 갑자사화로 김굉필이 配所에서 죽고, 중종반정(1506) 후 고암으로 와서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벼슬은 사헌부 감찰, 비안, 군위군수 등. 구니서원 사현사에 배향.
- 건물들 건축 년도 애매함 -> 사현사는 1943년에 창건된 건물이며 1986년부터 3년에 걸쳐 사현사, 동재, 서재, 문루가 중창되었다. 사현사의 오른편에는 협문을 두고 김굉필을 향사하는 별도의 사우祠宇가 있다. (창녕군 제공 자료) / 사현사는 1943년에 창건한 건물을 1986년부터 9년에 걸쳐 동·서재 및 문루와 함께 중창하였다. (창녕군 홈페이지 http://www.cng.go.kr/tour/culture/00001351.web?amode=view&idx=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