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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홍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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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홍제암
Hongjeam Hermitage of Haeinsa Temple, Hapcheon
합천 해인사 홍제암,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해인사 홍제암
영문명칭 Hongjeam Hermitage of Haeinsa Temple, Hapcheon
한자 陜川 海印寺 弘濟庵
주소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21
국가유산 종목 보물 제1300호
지정(등록)일 2000년 9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합천 해인사 홍제암,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홍제암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가 선조(재위 1567-1608)의 하사로 1608년에 창건하여 수도하시다가 입적하신 곳이다. 1614년(광해 6년)에 혜구(慧球)스님이 영자전(影子殿)을 지어 서산ㆍ사명ㆍ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1674년에 현종이 홍제당(암)을 사액(賜額)하였으며 그동안 6차례 보수하였다. 현존 건물은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예산 조치로 1979년 10월에 완전 해체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보물 제1301호)가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홍제암은 해인사 서쪽 방향에 위치한 부속암자로,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말년에 수도하다가 입적한 곳이다.

유정은 16세에 출가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다. 1604년 국서를 가지고 왜로 건너가 강화를 체결하고 조선인 포로 3천여 명을 데리고 돌아오기도 하였으며 1608년 이 자리에 초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1610년 입적하였다.

암자의 이름은 광해군이 사명대사의 입적을 애도하며 내린 시호를 따서 지었다. 중앙의 법당에 걸려있는 편액은 1674년 현종이 사액한 것이다.

홍제암은 불전과 생활공간, 영정 봉안을 위한 누각형 공간 등 여러 기능의 공간들이 한 건물에 있는 특이한 형태의 암자이다. ‘工’자형 평면으로 배치된 모든 방이 툇마루를 통해 연결된다. 경사진 대지에 건물을 지으면서 공간별로 건축 수법을 달리 하여 돌출된 곳은 누각형으로, 법당 등은 단층 구조로 만들었다. 지금의 건물은 1979년 해체 복원한 것이다.

불전에는 본존인 아미타불과 협시불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으며, 불전 오른편에 승려 혜구가 입적한 고승 16명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영자전이 있다. 영자전은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1614년에 지은 것으로, 현판은 조선 영조 때 불렸던 이름인 ‘표충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홍제암 인근에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보물 제 1301호)가 있다.

  • 홍제암 ->‘인법당(큰 법당이 없는 절에서 중이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신 집)’ 용어 사용해서 설명할 것인지..? 1770년(영조 46) 해봉이 중건했다고 하며 그 이후에도 수차례 보수한 것이라고 한다. 현 건물은 1979년 10월에 완전 해체 복원한 것이다.
  • 다른 구조 추가 설명? -> 왼쪽 : 서래당 / 서래당 뒤편 : 근현대 한국불교 대표 승려 자운 (1911~1992) 영각 / 뒤편에 별도 건물 (정견각) - 산신각 역할 하는 것으로 추정
  • 사명대사 주요 행적 -> 16세에 출가,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움 , 1604년 국서를 가지고 왜로 건너가 강화를 체결하고 조선인 포로 3천여 명을 데리고 돌아옴. 1608년 홍제암 자리에 초가 암자를 짓고 수도하다가 1610년 입적.
  • 현판의 ‘표충사’는 조선 영조 때 불렸던 명칭. 밀양에도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가 있기 때문에 후에 홍제암에서는 ‘표충사’라는 이름을 쓰지 않게 되었음.
  • 홍제암 일원에 있는 부도(뒷쪽 산 입구 위치)는 입적한 해인 1610년에, 비석(오른쪽 담장 밖 위치)은 1612년에 세워진 것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