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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류씨 수동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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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3월 10일 (화) 14: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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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류씨 수동재사
Sudongjaesa Ritual House of the Pungsan Ryu Clan
풍산류씨 수동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풍산류씨 수동재사
영문명칭 Sudongjaesa Ritual House of the Pungsan Ryu Clan
한자 豊山柳氏 水洞齋舍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석길 6-89 (수리)
지정(등록) 종목 시도민속문화재 제127호
지정(등록)일 2001년 11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풍산류씨 수동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수동재사는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었다. 아들 류초(柳初)가 지은 『유천선생유고(柳川先生遺稿)』의 「상로재기(霜露齋記)」를 보면 류성룡이 죽은 후 5년이 되는 광해군 3년(1611)에 승려 포우(浦右)의 도움으로 재사를 짓고 ‘상로재(霜露齋)’*라는 현판을 달았다고 하였다.

정면 8칸, 옆면 7칸 크기로 1600년대 초반에는 2칸으로 지었던 것을 1600년대 중반에 지금과 같은 크기로 늘리어 지었다고 한다. 19세기 전후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 상로재: 『예기』에 ‘봄에 이슬이 촉촉이 내리거나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마다 그리워한다.’는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다. 「상로재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영문

Sudongjaesa Ritual House of the Pungsan Ryu Clan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중기의 재상이자 학자였던 류성룡(1542~1607)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하회마을에서 태어난 류성룡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서 혼란스러운 정국을 잘 이끌었으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이 재사는 1611년에 처음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증축, 보수되었다. 재사가 위치한 마을의 이름을 따서 ‘수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청에는 이 재사의 별명인 ‘상로재(霜露齋)’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상로(서리와 이슬)는 유교 경전의 하나인 『예기』에 나오는 말로, ‘봄에 이슬이 내릴 때와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면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