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소곡서당
창녕 소곡서당 Sogokseodang Village Study Hall, Changn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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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창녕 소곡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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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ogokseodang Village Study Hall, Changnyeong |
한자 | 昌寧 蘇谷書堂 |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우천길 111 (고암면)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376호 |
지정(등록)일 | 2005년 7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창녕 소곡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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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창녕 소곡서당은 창녕군 남사면 끝자락에 있는 현재의 초·중등학교 수준의 사설 교육기관이다. 1650년경에 세워진 소곡서원이 쇠퇴하여 1856년 원래 서원 터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지금의 소곡서당을 지었다.
소곡서당의 건물은 ‘튼ㅁ’자형*으로 남북선상에 대문채와 강당이 있고 좌우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대들보 등에 소나무 대신 활엽수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조선 후기 창녕 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형태의 건축적 특징이다. 서당 건축의 평면 형식과 구조를 잘 보여주는 문화재로 평가된다.
- 일반적인 ㅁ자형처럼 건물을 연결하지 않고 ㅁ자형으로 배치하여 서로 마주보게 한 형태
영문
Sogokseodang Village Study Hall, Changnyeong
Sogokseodang is a village study hall in Changnyeong. Village study halls, called seodang in Korean, were local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s established to teach classical Chinese and elementary Confucian classics.
The history of Sogokseodang starts with the establishment of Sogoksa Shrine in 1650. The shrine honored No Byeon-so, a scholar who lived during the downfall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and the foundation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No Byeon-so was a loyal subject of Goryeo, who refused to pursue a political career under Joseon and instead chose to live a secluded life in Changnyeong.
In 1857, the shrine was elevated to the status of a Confucian academy, which functioned both as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The Confucian academy was built about 500 m away from the original location of the shrine.
Shortly after, in 1864, it was shut down according to a nationwide decree. Later, it was opened again as a village study hall named Sogokseodang.
The tomb of No Byeon-so (Gyeongsangnam-do Monument No. 153) is located about 500 m to the south of the study hall.
영문 해설 내용
서당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으로,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한문을 가르쳤다.
소곡서당의 시초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인 노변소를 기리고자 1650년경 소곡사를 세운 것에서 비롯되었다. 노변소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키고자 조선 왕조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창녕에서 은거하였다.
소곡사가 1857년 소곡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원래 위치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이건되었다. 서원은 1864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손되었으며, 이후에는 서당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500여미터 지점에 노변소의 묘(경상남도 기념물 제153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