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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로 직봉 -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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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로 직봉 -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제2로 직봉 -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대표명칭 제2로 직봉 -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한자 第2路 直烽 – 城南 天臨山 烽燧 遺蹟
국가유산 종목 사적
웹사이트 제2로 직봉 - 성남 천림산 봉수 유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봉수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를 올려 국경의 긴급한 군사정보를 중앙에 알리던 옛 통신 수단이다. 평소에는 1개, 적군이 나타나면 2개, 적군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적군이 국경을 넘어서면 4개, 적군이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이나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냈다. 이 중 평소 평화로울 때 올리는 1개의 봉수를 평안화(平安火) 혹은 태평화(太平火)라고 했다. 조선시대 봉수는 5개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고종 31년(1894)까지 유지되었다. 제1로 함경도 경흥, 제2로 경상도 동래(부산), 제3로 평안도 강계, 제4로 평안도 의주, 제5로 전라도 여수에서 각각 그 신호가 시작되어 매일 저녁시간 서울 목멱산(남산)에 최종 전달되었다.

천림산 봉수는 부산 응봉 봉수에서 시작된 신호를 용인 석성산 봉수로부터 받아 최종 목적지인 서울 목멱산 봉수에 전달하는 제2로 직봉 노선의 마지막에 위치하였다. 25명의 봉수군이 배정되었으며 5명씩 조를 나누어 근무하였다. 시기에 따라 천천산(穿川山), 천천현(穿川峴), 월천현(月川峴), 천림산(天臨山) 봉수 등으로 명칭이 달라졌다. 2000년 지역 주민이 현 위치의 봉수 유적을 제보함에 따라 기록에만 전해지던 천림산 봉수의 모습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발굴 조사를 통해 5개의 연조(煙竈)*, 방호벽, 담장 등과 봉수군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특히 4연조에서는 불을 피워 재가 흘러내린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2019년 4개의 연조와 방호벽, 담장 등이 복원되었으며 1연조는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 조치 되었다. 2002년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 국가지정유산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 연조(煙竈):연기나 햇불을 올리기 위해 불을 피우는 아궁이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봉수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를 올려 국경 지역의 긴급한 군사정보를 중앙에 알리던 옛 통신 수단이다. 평소에는 1개, 적군이 나타나면 2개, 국경에 접근하면 3개, 국경을 넘어서면 4개,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이나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것으로 신호를 보냈다. 조선시대 봉수는 5개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북쪽으로 3개 노선, 남쪽으로 2개 노선이 있었다. 이중 천림산 봉수는 부산에서 올라오는 신호를 서울로 보내는 제2로 노선의 마지막 봉수이다. 25명의 봉수군이 배정되었으며 5명씩 조를 나누어 근무하였다.

2000년 지역주민의 제보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서 봉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발굴 조사를 통해 연조(煙竈)*, 방호벽, 담장 등과 봉수군들이 사용하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2019년 4개의 연조와 방호벽, 담장 등이 복원되었으며 1연조 구역은 발굴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2002년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23년 국가지정유산 사적으로 승격되었다.

  • 연조(煙竈):연기나 햇불을 올리기 위해 불을 피우는 아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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