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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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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9univ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4월 23일 (금) 09:00 판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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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장
Jangdojang (Ornamental Knife Making)
장도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장도장
영문명칭 Jangdojang (Ornamental Knife Making)
한자 粧刀匠
주소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매천로 771 (장도전수교육관)
국가유산 종목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지정(등록)일 1978년 2월 23일
분류 무형문화재/전통기술/공예
웹사이트 장도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장도는 몸에 지니고 다니는 조그마한 칼이다. 고려시대부터 성인 남녀가 호신용으로 휴대했다. 특히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사대부 가문 부녀자들이 순결을 지키기 위해 지니고 다니던 필수품이었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몸 단장용 노리개로 사치품화되면서 한층 정교해졌다. 장도 중에서 몸에 차는 칼은 패도(佩刀), 주모니 속에 넣어 다니던 칼은 낭도(囊刀)라고 한다. 재료에 따라 금장도, 은장도, 백옥장도 등이 있다. 특히 은장도는 시집가는 딸에게 ‘정절의 표상’으로 마련해주기도 했다. 낙죽장도(烙竹長刀)는 선비들이 대나무에 좋아하는 시문을 새겨 가지고 다니던 칼이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 영주, 남원, 광양 등지에서 많이 만들어졌고, 그중에서도 광양 장도가 뛰어났다. 역사가 오래됐고, 섬세하고 다양하며, 한국적 우아함과 섬세한 공예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도장은 장도를 만드는 기능을 가진 사람이다. 광양에서 오래전부터 전통 장도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박용기(朴龍基) 씨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60호로 지정받았다.

수정 국문

초고

장도는 몸에 지니고 다니는 조그마한 칼로 남녀 구별없이 허리띠나 주머니끈에 늘 차고 다니면서 호신과 장신구 겸용으로 사용하였다. 장도는 신라시대 장도 형태의 장식이 출토된 것으로 그 기원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로 들어와서는 손칼로서의 실질적 기능보다는 상징성과 장식성이 강조되어 여인들의 몸 단장용 노리개로 사치품화되면서 한층 정교해졌다. 장도는 휴대 방식에 따라 몸에 차는 패도(佩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던 낭도(囊刀)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재료에 따라 금장도, 은장도, 백옥장도, 낙죽장도로도 나눌 수 있다. 은장도는 시집가는 딸에게 ‘정절의 표상’으로 마련해주던 칼이었으며, 낙죽장도는 선비들이 좋아하는 시문을 대나무에 새겨 다니던 칼이었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 영주, 남원, 광양 등지에서 다수 제작되었다. 그 중에서도 광양의 장도가 가장 으뜸으로 손꼽히는데 역사가 오래되었고 섬세하고 다양하며, 한국적 우아함과 섬세한 공예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도장은 이러한 장도는 만드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1978년 2월 장도장이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통기법이 가장 잘 전수, 보존된 전남 광양의 박용기(朴龍基)가 최초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고, 1993년 7월 전남 곡성의 한병문(韓炳文)이 이어서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차 수정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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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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