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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식암 황섬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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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식암 황섬 신도비
이원식 기자, 순흥 거묵골(태장2리) 「식암 황섬 신도비」 ‘경북도문화재자료’로 지정, 영주시민신문, 2020년 12월 18자 기사.
대표명칭 영주 식암 황섬 신도비
한자 榮州 息庵 黃暹 神道碑
주소 경북 영주시 풍기읍 백리 522번지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81호
시대 조선시대



해설문

국문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이 비석은 조선 선조 때 활약한 황섬(黃暹, 1544~1616)이 세상을 떠난 지 159년 뒤인 영조 51년(1775)에 세워졌다. 황섬의 무덤은 신도비에서 북동쪽 300여m 거리에 있다. 신도비는 비각 안에 모셔져 있는데 거북받침돌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산(山)자 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신은 높이 162㎝, 너비 89㎝, 폭 25.5㎝의 크기이며, 비문은 남태저가 짓고 두전*과 비문의 글씨는 강세황이 썼다. 비문은 해서체로 되어 있으나 아랫부분은 마모가 심하여 거의 읽을 수가 없다.


  • 두전(頭篆) : 비석의 꼭대기의 앞부분에서부터 옆면과 뒷면에 걸쳐 전자(篆字)로 새긴 글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조선시대의 문신 황섬(1544-1616)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비이다.

영주 출신인 황섬은 1570년에 과거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특히 1592년의 임진왜란 때 어가를 호종하였으며 전쟁 중 군량 수운에 공을 세워 전쟁 후 공신에 임명되었다.

비석은 1775년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남태저(1709-1774)가 짓고, 두전 및 글씨는 명필로 이름난 강세황(1713-1791)이 썼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아랫부분은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려우며, 현재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 강세황의 해서체로 된 신도비가 많지 않다는 점을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함.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