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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석보군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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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석보군 묘소
충주 석보군 묘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충주 석보군 묘소
한자 忠州 石保君 墓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다래월2길 20 (소태면)
국가유산 종목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84호
지정(등록)일 2011년 3월 4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곽
웹사이트 충주 석보군 묘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석보군(石保君, 1399∼1447)은 조선 정종(定宗)의 9남으로 이름은 이복생(李福生)이다. 본성이 청렴검소하고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였다고 한다. 검묵을 생활신조로 삼아 호를 검묵당(儉黙堂)으로 하였다. 시호는 정혜(靖惠)이며 1871년(고종 8) 석보군 군호(君號)를 받고 영종정경부사(領宗正卿府事)로 추봉되었다. 부인은 학성군부인(鶴城郡夫人) 원주 김씨이며 석보군과 합장하였다.

석보군의 무덤은 당초 경기도 양주군 미아리(현 서울시 미아동)에 있었으나 도시개발로 인해 1958년 현재의 위치(충주시 소태면 양촌리 산46-6)로 이전하였다. 이때 1872년 건립한 묘표*와 장명등*을 함께 옮겨왔다. 1964년 가첨석(加檐石)을 갖춘 묘비를 세웠고 1990년에는 묘소 입구에 신도비를 설치하였다.


*묘표(墓表) : 죽은 이의 이름, 생몰 연월일, 행적 등을 새기어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이나 푯말 *장명등(長明燈) : 무덤 앞이나 절 안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의 왕자였던 석보군 이복생(1399-1447)과 부인 원주 김씨의 합장묘이다.

이복생은 조선의 2대 왕인 정종의 아홉 번째 아들이다. 검소한 성정으로 유명했으며, 1871년 군호를 받았다.

본래 경기도 양주에 속하는 미아리(현 서울시 미아동)에 있었으나, 도시 개발로 인해 195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1872년에 세운 묘표와 장명등도 함께 옮겨왔다.

묘역은 2단으로 조성되었으며, 봉분은 12지신으로 장식한 보호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 혼유석, 향로석, 동자석 1쌍, 장명등,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석양 1쌍 등의 석물과 2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봉분 앞에 있는 비석이 1872년 세운 묘표이며, 왼쪽에 있는 것은 1964년에 세워졌다.

장명등과 오른쪽의 비석을 제외한 대부분의 석물은 1990년 묘소정화사업을 시행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묘역 입구에는 1990년 세워진 신도비가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