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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화동서원 정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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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화동서원 정모재
고창 화동서원 정모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창 화동서원 정모재
한자 高敞 華東書院 靖慕齋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734-1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90호
지정(등록)일 2012년 11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8,527㎡
웹사이트 고창 화동서원 정모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모재’는 고려 말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낸 문안공 김양감의 13대 손 매은 김오행이 거처하던 집이다. 정모재 자리에는 본래 초가 형태의 건물이 있었으며, 1912년에 서재 명성재와 함께 다시 지었다. 새로 지은 건물에는 김오행을 추모하는 의미로 ‘정모’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오행은 고려가 망하자 선대의 유훈에 따라 조선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다가 타계하여, 개성의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으로 부른다.

정모재는 기단 위에 화강석의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다 둥근 기둥을 세운 뒤에 도리로 결구하였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정모재는 전형적인 서원 건축의 형태를 띠며, 관련 기록이 남아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광산 김씨의 사우가 있는 화동 서원의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본래 광산 김씨 가문의 김오행이 살던 집이라고 전한다. 초가 건물이었으나, 1912년 서재인 명성재와 함께 현재의 형태로 다시 지어졌고, 중건 후 김오행을 추모하는 의미로 ‘정모’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오행은 고려가 망하자 선대의 유훈에 따라 고창에서 은거하면서 조선에서 벼슬하지 않았으며,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다가 죽었다.

화동서원은 고려 때의 문신 김양감과 김인우, 김승길, 김오행 등 광산 김씨 가문 출신으로 고려에 충절을 바친 4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게 된 것은 1957년 이후이며, 경내에는 강당인 정모재를 중심으로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있고, 내삼문을 지나 사당인 교동사가 있어 전형적인 전학후묘형 배치를 이루고 있다.

참고 자료

  • 치과의사 개그맨 김영삼의 개인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a18032/220465465612 -> 김오행 행적, 고창과 광산 김씨 가문 관계 언급(김인우가 이 지역 현감으로 좌전된 이후 낙향하여 고창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설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