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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금대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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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5월 18일 (월) 15:2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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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금대사삼층석탑
함양 금대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금대사삼층석탑
한자 咸陽 金臺寺三層石塔
국가유산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지정(등록)일 1972년 2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함양 금대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금대사는 656년(신라 태종무열왕 3)에 행평조사(行平祖師)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신라 때의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곳을 참배지로 정하였으며, 고려 때의 보조국사(普照國師)와 조선 때의 서산대사(西山大師)가 도를 닦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6.25 때 소실된 것을 다시 건립하였다.

이 탑은 일반적인 석탑에서 볼 수 있는 받침대(基壇)가 없고, 바윗돌 위에다 바로 1층의 몸체(塔身)를 세운 특수한 양식의 탑이다. 받침대가 없기는 하지만, 지붕돌(屋蓋石)이나 몸체, 그리고 꼭대기 부분(上輪部)은 거의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탑신에는 각각 모서리기둥을 조각한 것 외에 다른 장식을 덧붙이지 않았다. 지붕돌 아래의 받침은 3층으로 처리하여 일반적인 통일신라의 5층탑 양식과 차이가 있다. 지붕돌의 처마는 밑선이 일직선으로 뻗어가다가 모서리 쪽에서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가 있다. 꼭대기에는 장식을 받치는 받침대(露盤)와 사발을 뒤엎어 놓은 형상의 복발(覆鉢), 위로 향해 핀 연꽃(仰花), 바퀴(寶輪), 덮개(寶蓋)가 온전하게 남아 있지만 원래의 것은 아닌 듯 하다. 전체적으로 받침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 부분이 원만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지붕돌 부분은 날렵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매우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탑은 금대사 창건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조각 수법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기 혹은 고려시대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656년 금대사가 창건될 때 함께 세워진 것이라고 전해지지만, 조각 수법으로 볼 때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석탑과 달리 기단이 따로 없고, 커다란 바위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바로 서 있다. 지붕돌의 처마 끝이 살짝 들려 있어서 경쾌한 느낌을 준다. 맨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은 제 모습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으며, 후대에 보충했을 가능성이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 ‘~ 사리를 ~’
    • 2번째 문단에 탑이 원위치가 아니라 이동된 것이라는 점 추가
    • ‘일반적인 석탑과 달리 기단이 따로 없고,’→ 원래의 기단은 확인되지 않고 이곳으로 옮기면서 커다란 바위를 기단으로 삼음
    • ‘맨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은 제 모습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으며, 후대에 보충했을 가능성이 있다.’→ 상륜부는 후대 보충부분임.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표현 삭제 필요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 불탑은 부처의 사리 즉 유골을 모신 건축물로, 불상과 함께 예배의 대상이자 그 자체가 불심 혹은 부처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 일반적인 석탑과 달리 기단이 따로 없고, 커다란 바위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바로 서 있다. 지붕돌의 처마 끝이 살짝 들려 있어서 경쾌한 느낌을 준다. 맨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은 제 모습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으며, 후대에 보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석탑과 다르게 기단이 없다. 커다란 바위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있는 삼층석탑이다. 사각의 몸돌은 네 모서리 기둥이 세워져 있고, 지붕돌은 처마 끝이 약간 올라가 있으며,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다. 지붕돌 아래 받침을 3단으로 얕게 두었다. 꼭대기 상륜부은 복발과 노반 등을 모방하여 만들었는데 이후에 보충된 것으로 보인다.
    • 이 삼층석탑은 656년 금대사가 창건될 때 함께 세워진 것이라고 전해지지만, 조각 수법으로 볼 때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금대사는 통일신라시대(656)에 세워진 사찰로, 바위가 기단부를 대신하고 있으며, 지붕돌의 가벼운 곡선처리 등이 경쾌하다. 각 부분의 모습들로 보다 조선초를 전후하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삭제해도 무관할 것으로 생각됨. 부기해야 한다면 추가 설명 개념으로 아래쪽에 간략히 서술하며, ‘불탑’ 보다는 ‘석탑’의 정의를 기술하는 것이 바람직함.
    • 이 삼층석탑은 656년 금대사가 창건될 때 함께 세워진 것이라고 전해지지만, 조각 수법으로 볼 때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 시대 편년은 현상 설명 후 마지막 문단에 하는 것이 바람직함. 석탑 높이, 크기, 결실 부재 등을 언급할 필요가 있음. 금대사 창건시기는 구전이며, 정확한 근거가 없음. 또한 석탑이 이때 건립되었다는 것도 구전이므로 이를 분명히 명기할 필요가 있음.
    • 일반적인 석탑과 달리 기단이 따로 없고, 커다란 바위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바로 서 있다. → 이 석탑이 있는 바위 위는 원래 위치가 아니며, 원래는 기단까지 있는 탑이었을 가능성이 높음. 즉 석탑은 지붕돌과 몸돌만 남아 있고 기단은 결실되었으며, 현재는 바위를 기단 삼아 세워 놓았다고 하는 것이 바름.
    • 맨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은 제 모습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으며, 후대에 보충했을 가능성이 있다. ‘후대에 보충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 올린 것으로 원 부재가 아닌 것이 확실함. 후대에 만들어 올린 머리장식(?)이 제 모습을 비교적 잘 갖추었다는 문장은 의미가 없으므로 삭제 요함.
    • 지붕돌의 처마 끝이 살짝 들려 있어서 경쾌한 느낌을 준다. 주관적인 표현이므로 지양 필요. 탑이 원래 3층이었고, 소형이며, 지붕돌 받침(옥개받침)이나 처마 끝 모양 등 양식 특징을 객관적으로 언급 필요.
    • 조각 수법으로 볼 때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편년을 내린 근거가 부족하며, 편년도 잘못되었음. 오히려 기존 문안의 편년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됨.(통일신라시대 말기 혹은 고려시대 초기)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사리, 즉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656년 금대사가 창건될 때 함께 세워진 것이라고 전해지지만, 조각 수법으로 볼 때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이 있는 바위 위는 원래의 위치가 아니며, 탑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커다란 바위를 기단 삼아 세워 놓았다. 원래는 기단까지 있는 탑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지붕돌과 몸돌만 남고 나머지 부분은 결실되었다. 지붕돌의 처마 끝이 살짝 올라가 있으며, 지붕돌 아래에 받침을 3단으로 얕게 두었다. 꼭대기에 있는 머리장식은 후대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