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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리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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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리지석묘
내동리 지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내동리지석묘
한자 內洞里支石墓
주소 대전 유성구 원내동 1번지
지정번호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호
지정일 1989년 3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지석묘
시대 청동시대
수량/면적 4기
웹사이트 내동리 지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부족장의 무덤으로, 지석묘 혹은 돌멘(dolmen)이라고도 한다. 모두 4기로 구성된 내동리 고인돌은 원래 ‘암소바위’로 불렸으나, 1977년 충남방적 공장을 지으면서 실시한 발굴조사 후 현재 위치(원내동)로 옮겨졌다.

구조는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탁자식(4호)과 지하구조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개석식 혹은 바둑판식(1~3호)으로 추정된다. 발굴 당시 1~3호 고인돌은 2~3m 간격으로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던 반면, 탁자식 고인돌은 이곳에서 15m가량 홀로 떨어져 있었다. 덮개돌은 탁자식인 4호(길이 3.5m, 너비 3.5m)가 가장 크며, 1호 고인돌에는 돌을 자르기 위해 파 놓은 홈이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 있다. 유물로는 3호 고인돌 주변에서 적갈색의 민무늬 토기 조각과 삼각형 돌화살촉 2점이 출토되었다.

대전 지역의 고인돌은 원내동을 비롯하여 교촌동 칠성당 고인돌, 대정동 고인돌 등 대전시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 아울러 최근 이 일대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같은 시기의 집자리 유적도 새롭게 확인되고 있다. 이는 고인돌 분포 지역이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지형 조건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무덤이다. 고인돌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세계 고인돌의 40%에 달하는 4만~4만 5천기의 고인돌이 한반도에서 발견되었다. 강화도에는 총 160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이중 70기가 전라도 화순과 고창의 고인돌들과 함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모두 4기로 구성된 내동리 고인돌은 1977년 충남방적 공장을 지으면서 실시한 발굴조사 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1호로 명명된 고인돌은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큰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돌을 자르기 위해 파 놓은 홈이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 있다.

나머지 3기의 고인돌들은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넓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이며, 발굴 당시 2~3m 간격으로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전 과정에서 3호 고인돌 주변에서 마제돌화살촉과 민무늬토기가 발굴되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