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복내당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0월 18일 (금) 13:09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복내당 福內堂
"복내당", 수원화성 테마관, 수원문화재단.
Goto.png 수원 화성 안내판 목록으로 가기
수원 화성행궁 안내판 목록으로 가기


해설문

국문

  • 1789년(정조 13) 건립
  • 1794년(정조 18) 증축
  • 1997년 복원

수원읍의 관청 내사(內舍)이며 고을 수령이 가족과 거처하는 용도로 지었다. 처음에는 왕의 숙소로 쓰였으며, 정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글씨를 써서 현판을 걸었다. 한나라 사람이 말한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을 담았다. 뒤에 행궁을 확장하며 왕의 처소인 장락당을 따로 마련하게 되자 오로지 수령의 숙소로만 이용되었다.

애초에는 역ㄱ자 모양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1794년(정조 18) 북쪽으로 온돌방 4칸 반을 추가하며 ㄷ자 모양으로 확장되었다. 서쪽으로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도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에워싼 분위기를 이뤘다. 20세기 초 도립병원으로 전용되며 철거되었다가 2002년 행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었다. 정조가 쓴 현판은 전하지 않는다.

국문 수정

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이 가족과 거처하는 건물이다. 화성행궁을 증축하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 쓰였다. 정조는 복내당이란 이름을 직접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다. 복내(福內)란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조가 쓴 현판은 남아있지 않다. 복내당은 왕의 처소인 장락당을 따로 만든 이후에는 수령의 숙소로만 이용되었다.

복내당은 처음에는 역ㄱ자 모양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정조 18년(1794) 북쪽으로 온돌방 4칸 반을 추가하면서 ㄷ자 모양으로 확장되었다. 서쪽으로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도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20세기 초 경기도립병원으로 사용되면서 철거되었고, 행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었다.

영문

Bongnaedang Hall

Bongnaedang, built in 1789, is one of the original main buildings of the temporary palace and was used as the sleeping chamber of the king. Later, when the temporary palace was expanded in 1794, Jangnakdang Hall was built as the king’s new sleeping chamber, and this hall came to be used only by local magistrates. The name “Bongnaedang (福內堂),” chosen by King Jeongjo, means “hall which radiates happiness from inside” and is a reference to a poem from Han China.

  • '복'은 happiness 아니면 fortune으로 봐야 할까?
  • "복내(福內)라는 이름은 "일으켜 얻는 것은 밖으로부터요, 복을 낳는 것은 안으로부터"라는 한서(漢書)의 글귀에서 따왔다."문화콘텐츠닷컴 이 설명이 더 낳은가?

영문 수정

Bongnaedang, built in 1789, is one of the original main buildings of the temporary palace. Originally used as the king’s sleeping chamber, this hall came to be used only by local magistrates after Jangnakdang Hall was built in 1794. The name “Bongnaedang (福內堂),” chosen by King Jeongjo, means “hall which radiates happiness from inside” and is a reference to a poem from Han China.

영문 해설 내용

복내당은 1789년에 건립되었으며, 처음에는 행궁의 중심건물로서 왕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1794년 행궁이 증축된 이후로는 수령의 처소로 쓰였다. 복내당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직접 지은 것이며, ‘복은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