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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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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3년 4월 18일 (화) 12:18 판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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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한자 楊州 靑蓮寺 石造如來立坐像 및 腹藏物)
국가유산 종목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94호
지정(등록)일 2020년 12월 3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불상 1구, 복장물 5점
웹사이트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삼성전의 본존상으로 봉안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사찰 재산 목록에는 ‘칠성여래(七星如來)’로 기록되어 치성광여래*로 여겨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석불상은 조선 후기 경상도 일대에서 많이 조성된 ‘불석(佛石)’이라는 연질의 돌로 만든 불상이다. 불석을 이용해 불상을 제작한 대표적인 승려 장인은 승호와 경옥 등으로 기림사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그의 유파에 의해 조성된 18~19세기 불상은 많이 남아있다.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은 풍만한 네모난 얼굴을 가진 상으로 흰색 안료인 호분으로 채색되어 있다. 머리카락의 표현은 소라 모양의 나발**을 만들어 붙이지 않고, 직접 돌을 깎아서 표현해 형식화된 면을 보인다. 이처럼 형식화된 나발 표현은 서울과 경기 일원에서 경주 불석으로 조성한 파주 보광사 응진전 석조불좌상, 서울 삼성암 석조불좌상, 서울 봉원사 석조불좌상에서도 확인된다. 물건을 들고 있지 않으며 3개의 손가락만 옷자락 바깥에 노출시키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경주 불석으로 조성된 양주 청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불상의 내부에서는 오색사에 묶인 후령통*** 1점과 『묘법연화경』 일부 등이 수습되었다.


  • 치성광여래: 불교에서 북극성을 부처로 바꾸어 부르는 이름.
  • 나발: 부처의 머리털.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라 하여 이렇게 이른다.
  • 후령통: 여러 종류의 복장물을 넣은 원통형 용기

영문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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