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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천로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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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9월 3일 (토) 15: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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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천로 묘소
대표명칭 차천로 묘소
한자 車天輅 墓所
지정(등록) 종목 과천시 향토유적



해설문

국문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차천로(1556~1615)의 묘소이다.

차천로는 선조 10년(1577) 문과에 급제하여 외교문서 작성을 전담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명에 원군을 요청하여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또한 한시*에 뛰어나 한호의 글씨, 최립의 문장과 함께 송도삼절**이라 불리었으며 현재는 조선시대 한문학의 중요한 인물로 연구되고 있다.

차천로의 행장***을 지은 이면주의 기록에 의하면 ‘과천의 동쪽 별앙리에 묘가 있었는데 산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과천시 관내에 차천로의 묘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묘소는 1958년 차천로의 후손이 발견하여 관리해왔다. 문인석의 양식에 따른 제작시기와 차천로의 사망시기가 일치하여 묘소의 주인이 차천로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17세기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문인석은 조선시대 묘제의 학술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으며, 그 외 나머지 석물들은 근래에 조성된 것이다. 현재 묘소 1기와 문인석 2기가 과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한시 : 일정한 형식과 규칙에 맞추어 한문으로 지은 시
  • 송도삼절 : 송도(개성)에서 빼어난 세가지
  • 행장 :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행적을 적은 글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차천로(1556~1615)의 묘소이다. 현재 묘소 1기와 묘소 앞에 서 있는 문인석 2기가 과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차천로는 1577년 문과에 급제한 뒤 관직에 올랐다.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 작성을 전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명에 원군을 요청하여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한시에 매우 뛰어났고, 현재는 조선시대 한문학의 중요한 인물로 연구되고 있다.

차천로의 묘소는 한때 그 위치가 잊혀졌고, 차천로의 행장에 남겨진 기록에 따라 과천의 동쪽 지역에 묘가 있었다고만 알려져 있었다. 이 묘소는 1958년 차천로의 후손이 발견한 것이다. 문인석의 양식으로 보아 1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와 차천로의 사망시기가 일치하여 묘소의 주인이 차천로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문인석을 제외한 나머지 석물들은 후대에 조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