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추성산성 - 남성 내성 우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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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내성 우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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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우물터는 북향 계곡에 인접한 내성內城의 중앙부 가장 낮은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우물의 형태는 원형으로 할석재[1]를 4~5단 둥글게 쌓아 올렸으며, 규모는 지름 100cm, 깊이 80cm 정도이다. 우물 내부에서는 토기 구연부편[2]이 출토되었는데, 내부의 숯을 방사성탄소연대[3]로 측정한 결과 4세기 것으로 확인되었다.
추성산성 석축 우물은 한성백제[4] 때 산성에서 우물이 조사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4세기 우물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 석재: 성벽을 쌓을 때 쓰이는 거칠게 다듬은 돌.
- ↑ 구연부편: 항아리, 그릇 등의 입구 조각.
- ↑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방사선을 이용해 유물· 유적의 절대연대를 측정하는 방법.
- ↑ 한성백제: 백제가 위례성 (현재 서울)에 수도를 두고 있었던 기간(BC 18년~AD 4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