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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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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9월 6일 (월) 12:0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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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재
추원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추원재
한자 追遠齋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안기2길 57-4 (안기동)
국가유산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지정(등록)일 1973년 8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추원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추원재는 고려 말 충신이자 효자로 이름난 김자수(金自粹, 1351~1413)의 제사를 모시는 재사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고 전하며, 원래 월곡면 노산리에 있는 어머니 일직손씨의 묘소 아래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김자수는 공민왕 23년(1374)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고려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3년간 시묘살이를 하여 정려를 받았다. 고려가 망한 뒤 고향인 안동에서 은거하였으며, 조선 태종(1400~1418 재위)이 형조판서에 임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자결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추원재는 건물 중앙에 온돌방을 두고, 방의 전면과 양옆에는 난간을 두른 마루를 배치하였다. 온돌방은 전실(前室)과 신실(神室)로 구분되어 있으며, 두 방 사이에는 문을 달아 공간을 구분하였다. 추원재 앞의 비각에는 김자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효자비가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추원재는 고려 말 충신이자 효자로 이름난 김자수(1351-1413)의 제사를 모시는 재사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고 전하며, 원래 월곡면 노산리에 있는 어머니 일직손씨의 묘소 아래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김자수는 1374년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고려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시묘살이를 하여 효행을 인정 받아 정려를 받았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는 고향인 안동에서 은거하였으며,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형조판서에 임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자결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추원재는 건물 중앙에 온돌방을 두고, 방의 전면과 양옆에는 난간을 두른 마루를 배치하였다. 온돌방은 전실(前室)과 신실(神室)로 구분되어 있으며, 두 방 사이에는 문을 달아 공간을 구분하였다. 추원재 앞의 비각에는 김자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효자비가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추원재 Place 추원재
김자수 Actor 김자수(金自粹, 1351-1413)
김자수_묘 Place 김자수_묘
경기도_광주 Place 경기도_광주
안동댐_건설 Event 안동댐_건설
효자비 Object 효자비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김자수 추원재 isRelatedTo
김자수_묘 김자수 isTombOf
김자수_묘 경기도_광주 currentLocation
추원재 안동댐_건설 isRelatedTo
추원재 효자비 isNear
효자비 김자수 isSteleOf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