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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동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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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4월 29일 (수) 15:14 판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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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동호정
함양 동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동호정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
지정(등록)일 2005년 10월 13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함양 동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의 의주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서 유영하던 곳으로, 그 충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 가선대부오위장(嘉善大夫五衛將)을 지낸 장재헌 등이 중심이 되어 1890년 건립한 정자이며 1936년에 중수가 있었다.

동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진 단동의 중층 누각건물이며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동호정은 호반의 자연암반 위에 건립된 정자건물로서 화림동의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그 아래 수정같은 맑은 물이 흐르며 물 가운데 차일암이라는 너럭바위가 있어 수백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널찍한 암반으로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을 갔던 장만리(章萬里)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1895년에 건립한 것이다. 1936년에 중수를 하였으며, 이후 지붕과 단청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장만리는 1583년에 관직에 나아갔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선조를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의미의 “영세불망자(永世不忘者)”란 교지를 내리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봉하였다.

정자가 세워진 곳은 장만리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지내던 곳으로, 그의 9대손인 장재헌(章載憲) 등이 중심이 되어 건립하였으며, 정자의 이름은 그의 호인 동호(東湖)를 따서 지은 것이다.

이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림동 계곡의 정자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

1차 수정

동호정은 조선시대의 충신이었던 장만리(章萬里)를 기리기 위해 1895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장만리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1567~1608 재위)를 모시고 피난하던 중 왜적을 만나자 왕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아나 화를 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에 선조는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라는 의미의 “영세불망자(永世不忘者)”란 교지를 내리고,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봉하였다.

정자가 세워진 화림동 계곡은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 곳곳에 정자를 짓고 교유하였다. 현재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등 세 곳의 정자가 남아있으며, 그중 동호정의 규모가 가장 크고 화려하다. 1936년에 중수하였고, 이후에도 지붕과 단청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함영 거연정 외 3개소 실측조사보고서』, 함양군, 2012.

→안내판에는 1890년에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 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건립 시기가 1895년으로 되어 있다. 안내판의 기록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