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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8일 (일) 00:25 판
충장공 정발 전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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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충장공 정발 전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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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壯公 鄭撥 戰亡碑 |
주소 |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 23 (좌천동, 정공단) |
국가유산 종목 | 시도기념물 제64호 |
지정(등록)일 | 2015년 10월 7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충장공 정발 전망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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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이 비석은 1761년(영조 37) 경상좌수사 박재하(朴載河)가 정발(1553~1592)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가대(永嘉臺)에 세운 것인데, 일제강점기 전차선로 개설에 따라 영가대가 헐리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온 것이다. 비의 앞면에는 ‘忠壯公鄭撥戰亡碑’라고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임진왜란 당시 정발 장군의 행적과 비를 세운 내력이, 좌측면에는 이 비석의 건립일, 우측면에는 박재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전투에서 순절한 부산진첨사 정발의 순절 내력과 호국충절을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제작자의 신분과 비석의 건립 의도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또한 이 비석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부산 지역과 부산진이 국방의 요지로 중요시되었음을 알려 주는 좋은 자료이다. 특히 구름사이로 두 마리 용이 마치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듯한 역동적인 표현의 이수(螭首, 비석의 머릿돌)는 조각기법이 뛰어나 조각사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정발(1553-1592)을 기리기 위해 1761년에 세운 것이다.
정발은 1592년 부산진의 최고 지휘관으로 부임하였으며, 그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부산에 침략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원래는 현재의 범일동 지역에 세워졌으나, 1917년 그 지역에 전차 선로가 개설됨에 따라 현재의 취이로 이전해왔다. 비의 앞면에는 비의 이름이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정발 장군의 행적과 비를 세운 내력이 새겨져있다. 좌측면에는 비석의 건립일이 새겨져 있고, 우측면에는 이 비를 세운 조선 후기의 무신 박재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