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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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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栱包):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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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삼문은 강릉대도호부 객사인 임영관의 정문이다. 고려시대인 936년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하며, 현재의 건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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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은 맞배지붕이고, 기둥은 4개씩 3줄로 놓여 전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를 이룬다. 앞줄과 뒷줄은 배흘림이 뚜렷한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고, 가운데 줄에는 네모난 기둥을 사용하여 기둥 사이에 널문을 달았다.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공포가 각 기둥 위에 설치되어 있고, 문 앞쪽에는 높은 돌계단을 쌓았다. 문에 걸려 있는 “임영관” 현판은 고려 31대 왕인 공민왕(재위 1351-1374)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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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 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낮은 구릉에 위치하여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2024년 5월 25일 (토) 15:57 판


강릉 임영관 삼문
Main Gate of Imyeonggwan Guesthouse, Gangneung
강릉 임영관 삼문,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대표명칭 강릉 임영관 삼문
영문명칭 Main Gate of Imyeonggwan Guesthouse, Gangneung
한자 江陵 臨瀛館 三門
주소 강원도 강릉시 임영로131번길 6 (용강동)
지정번호 국보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강릉 임영관 삼문,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강릉 임영관 삼문은 936년(고려 태조 19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강릉 객사인 임영관의 외문이다. 현재의 건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전면 3칸, 측면 2칸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栱包)*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단아한 형태로 꾸며져 있고, 중앙 각기둥 3칸에는 널문을 달았다.

삼문으로 진입하는 전면은 비교적 높은 돌계단을 쌓았고, 측면과 후면에는 둥근 자연석 초석을 배열하였는데 각기 다른 모양이다. 전‧후면 기둥은 배흘림이 뚜렷한 원주를 사용하였고, 중간 줄에는 네모난 기둥을 사용하여 문을 달았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 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낮은 구릉에 위치하여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중요 국가유산이다.


  • 공포(栱包):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삼문은 강릉대도호부 객사인 임영관의 정문이다. 고려시대인 936년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하며, 현재의 건물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기둥은 4개씩 3줄로 놓여 전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를 이룬다. 앞줄과 뒷줄은 배흘림이 뚜렷한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고, 가운데 줄에는 네모난 기둥을 사용하여 기둥 사이에 널문을 달았다.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공포가 각 기둥 위에 설치되어 있고, 문 앞쪽에는 높은 돌계단을 쌓았다. 문에 걸려 있는 “임영관” 현판은 고려 31대 왕인 공민왕(재위 1351-1374)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 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낮은 구릉에 위치하여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