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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3일 (월) 15:09 판


성벽
Goto.png 종합안내판: 배산성지



해설문

국문

배산성지 내에 있는 배산성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성벽으로 둘러가며 쌓은 전형적인 신라식 석축 산성이다. 해발 고도는 낮지만 부산의 남부 해안가와 내륙 지역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삼국 시대부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로 알려져 있다.

이 성은 예전부터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2009년 부산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 결과,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편축식 성벽으로 보고되었다. 2016년에는 시굴 조사를 통해 내벽과 외벽에 기단보축(基檀補築)*을 갖춘 전형적인 고대 석축 산성임을 확인했으며, 이후 세 차례의 발굴 조사를 더 실시하였다.

배산성의 성벽은 사각형으로 깎은 돌을 가로 방향으로 쌓아 줄눈을 맞춘 ‘품(品)’자형 외벽과, 외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단보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서쪽 성벽은 삼국 시대 축조 방식에 따라 직사각형의 돌을 수직으로 쌓았으나, 동쪽 성벽은 통일 신라 시대 축조 방식에 따라 정사각형에 가까운 돌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쌓은 것이 특징이다. 삼국 시대에 수직쌓기로 만든 성벽이 무너지자 통일 신라 시대에 와서 당시의 축조 방식인 계단쌓기로 대대적인 수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몸체 부분의 바닥을 조사한 결과, 큰 할석**들로 내부를 계단식으로 나눈 뒤 그 사이를 작은 돌 등으로 쌓아 성벽 기초를 만든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성벽이 무너지지 않게 기초부를 탄탄히 축조했음을 의미한다.

배산성은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한국 고대 성곽의 축조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 기단보축(基檀補築): 성벽 붕괴를 막기 위해 하단에 추가로 돌을 쌓은 것으로 신라 시대에 성을 쌓던 방식이다.
  • 할석(割石): 깬 돌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