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강릉향교 동무, 서무, 전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강릉향교동무서무전랑.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220890000 강릉향교...)
 
31번째 줄: 31번째 줄:
 
규모는 전면 9칸, 측면 1칸이고, 가운데 문은 신문(神門), 좌우의 문은 인문(人門)이다. 신문은 솟을지붕으로 만들어 위계성을 강조하고, 서까래 아래의 단면을 각서까래처럼 깎아 겹처마의 느낌이 나도록 하는 등 조형미가 뛰어나다.
 
규모는 전면 9칸, 측면 1칸이고, 가운데 문은 신문(神門), 좌우의 문은 인문(人門)이다. 신문은 솟을지붕으로 만들어 위계성을 강조하고, 서까래 아래의 단면을 각서까래처럼 깎아 겹처마의 느낌이 나도록 하는 등 조형미가 뛰어나다.
  
 +
----
 
* 초익공: 창방과 직교하여 기둥머리에 끼이고 보를 받는 익공쇠서가 한 개로 짜여진 그 공포 또는 부재
 
* 초익공: 창방과 직교하여 기둥머리에 끼이고 보를 받는 익공쇠서가 한 개로 짜여진 그 공포 또는 부재
 
* 판대공: 여러 쪽의 널을 가로 포개어 꾸민 대공
 
* 판대공: 여러 쪽의 널을 가로 포개어 꾸민 대공
42번째 줄: 43번째 줄: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
이 세 건물은 강릉향교의 주 사당인 대성전과 함께 향교의 제향공간을 구성한다. 대성전 앞마당 양옆에 위치한 동무와 서무는 대성전의 부속 사당으로 한국과 중국 유교 성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대성전 맞은편의 전랑은 향교의 제향공간과 교육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세 건물 모두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알 수 없고, 전랑은 1721년에 고쳐 지어졌다.
  
 +
동무와 서무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문장가인 설총과 최치원(857-?)을 비롯한 총 115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각각 동무에 58위, 서무에 57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두 건물의 전반적인 형태는 비슷하지만, 크기는 서무가 조금 크다. 동무와 서무 앞면의 양옆에는 가는 나무 막대기를 세워 만든 창문을 설치해 환기가 잘 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창문의 형태와 내부 바닥에 깔린 전돌 등에서 고식(古式)의 건축 기법을 엿볼 수 있다.
 +
 +
전랑에는 건물 가운데와 양쪽 끝부분에 출입문이 있다. 가운데의 문은 혼이 드나든다고 여겨지는 신문(神門)이고, 양옆의 문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인문(人門)이다. 신문에는 높은 지붕을 달아 위계성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향교의 제향공간은 담장을 두르고 세 개의 문이 나란히 붙어 있는 내삼문을 설치한다. 회랑 형태의 건물에 문이 설치된 경우는 전국에서 강릉향교가 유일하며, 내삼문의 형식이 갖추어지기 전의 형식인 것으로 추정된다.
  
  
52번째 줄: 57번째 줄:
 
[[분류:강릉향교]]
 
[[분류:강릉향교]]
 
[[분류:향교]]
 
[[분류:향교]]
 +
[[분류:동서무]]
 
[[분류:2022 영문집필]]
 
[[분류:2022 영문집필]]

2022년 12월 18일 (일) 11:22 판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
한자 江陵鄕校 東廡‧西廡‧前廊
지정(등록) 종목 보물 제2089호
지정(등록)일 2020년 12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동무·서무는 우리나라 및 중국의 성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동무에는 설총을 비롯한 58위의 위패, 서무에는 최치원을 비롯한 57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동무·서무는 각각 전면 5칸, 측면 1칸의 건물로 서무가 조금 크다. 동무는 초익공*과 판대공** 형식, 서무는 물익공***과 동자대공**** 형식으로 건축된 것이 큰 차이점이다. 특히 가는 살을 세워 댄 창인 사롱창과 베개 모양의 동자대공, 바닥에 깔린 전돌 등에서 고식(古式)의 건축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전랑은 대성전의 위패를 모시는 공간과 명륜당의 교육 공간을 구분하는 회랑(回廊) 형태의 출입문인데, 향교에 회랑이 있는 경우는 전국 향교 중에서 강릉향교가 유일하다. 회랑 형태의 전랑은 향교에 삼문 형식이 갖추어지기 전의 형식으로 추정되며, 1721년 고쳐 지은 이래 큰 변화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규모는 전면 9칸, 측면 1칸이고, 가운데 문은 신문(神門), 좌우의 문은 인문(人門)이다. 신문은 솟을지붕으로 만들어 위계성을 강조하고, 서까래 아래의 단면을 각서까래처럼 깎아 겹처마의 느낌이 나도록 하는 등 조형미가 뛰어나다.


  • 초익공: 창방과 직교하여 기둥머리에 끼이고 보를 받는 익공쇠서가 한 개로 짜여진 그 공포 또는 부재
  • 판대공: 여러 쪽의 널을 가로 포개어 꾸민 대공
  • 몰익공(물익공): 쇠서를 절단한 익공으로 보머리를 받치는 부재
  • 동자대공: 짧은 기둥을 사용하여 만든 대공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세 건물은 강릉향교의 주 사당인 대성전과 함께 향교의 제향공간을 구성한다. 대성전 앞마당 양옆에 위치한 동무와 서무는 대성전의 부속 사당으로 한국과 중국 유교 성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대성전 맞은편의 전랑은 향교의 제향공간과 교육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세 건물 모두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알 수 없고, 전랑은 1721년에 고쳐 지어졌다.

동무와 서무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문장가인 설총과 최치원(857-?)을 비롯한 총 115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각각 동무에 58위, 서무에 57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두 건물의 전반적인 형태는 비슷하지만, 크기는 서무가 조금 크다. 동무와 서무 앞면의 양옆에는 가는 나무 막대기를 세워 만든 창문을 설치해 환기가 잘 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창문의 형태와 내부 바닥에 깔린 전돌 등에서 고식(古式)의 건축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전랑에는 건물 가운데와 양쪽 끝부분에 출입문이 있다. 가운데의 문은 혼이 드나든다고 여겨지는 신문(神門)이고, 양옆의 문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인문(人門)이다. 신문에는 높은 지붕을 달아 위계성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향교의 제향공간은 담장을 두르고 세 개의 문이 나란히 붙어 있는 내삼문을 설치한다. 회랑 형태의 건물에 문이 설치된 경우는 전국에서 강릉향교가 유일하며, 내삼문의 형식이 갖추어지기 전의 형식인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