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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개운포 좌수영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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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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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포 좌수영성은 조선시대인 1459년부터 1592년까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가 이끄는 군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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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수영은 1413년 지금의 부산 지역에 최초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당시 부산 지역은 일본인들이 자주 오고 가는 지역이기 때문에, 수영을 두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1459년 개운포로 수영이 옮겨졌다. 이후 경상좌수영은 다시 부산 해운포로 옮겨갔으나, 임진왜란 때에도 이 성에서 세 차례 정도 전투가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개운포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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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수영성은 외황강과 울산만이 만나는 골짜기의 능선에 지어졌다. 성벽의 모양은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고, 남아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1,264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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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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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운포성지, 울산역사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ul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ulsan&dataType=99&contents_id=GC800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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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개운포성지, ‘개운포 좌수영성’으로 이름 바뀐다”, 한겨레, 2021.05.13. https://www.hani.co.kr/arti/area/yeongnam/995001.html
  
  

2022년 9월 8일 (목) 22:32 판


울산 개운포 좌수영성
대표명칭 울산 개운포 좌수영성
한자 蔚山 開雲浦 左水營城
주소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 81번지 일원
국가유산 종목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6호
지정(등록)일 1997년 10월 9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수량/면적 21,899㎡
웹사이트 울산 개운포 좌수영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울산 개운포 좌수영성은 조선 세조 5년(1459)부터 선조 25년(1592) 까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었다.

경상좌수영은 동래 부산포에 최초로 설치되었는데, 일본 배가 자주 오고 가는 곳에 수영을 두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등의 이유로 이곳으로 옮겨 왔다.

외황강과 울산만이 만나는 곳에 있고, 평지와 산지의 특성을 모두 지닌다. 성벽의 둘레는 약 1,264m이며, 모양은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성 안에 골짜기가 있다.

경상좌수영이 다시 동래 해운포로 옮겨 간 이후인 임진왜란 때에도 이 성에서 세 차례 정도 전투가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개운포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 조선시대 낙동강 동쪽인 동남해안을 방어하는 수군의 지휘 본부, 줄여서 ‘경상좌수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개운포 좌수영성은 조선시대인 1459년부터 1592년까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가 이끄는 군대가 주둔하던 곳이다.

경상좌수영은 1413년 지금의 부산 지역에 최초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당시 부산 지역은 일본인들이 자주 오고 가는 지역이기 때문에, 수영을 두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1459년 개운포로 수영이 옮겨졌다. 이후 경상좌수영은 다시 부산 해운포로 옮겨갔으나, 임진왜란 때에도 이 성에서 세 차례 정도 전투가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개운포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좌수영성은 외황강과 울산만이 만나는 골짜기의 능선에 지어졌다. 성벽의 모양은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고, 남아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1,264m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