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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행궁은 왕이 궁궐을 떠나 멀리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에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1625년에 건립되었다. 조선시대 전국에 있던 10여 개 이상의 행궁 중 유일하게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종묘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갖춘 곳이었다. 이는 남한산성 행궁이 왕의 임시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 임시 수도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곳이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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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은 왕이 궁궐을 떠나 멀리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에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1625년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재위 1623-1649)가 이곳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고, 병자호란 이후에는 조선의 왕들이 선대 왕릉에 참배하러 오가는 길에 거처로 사용하였다. 남한산성 행궁은 조선시대 전국에 있던 행궁 중 유일하게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종묘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갖춘 곳이었다. 이는 이곳이 왕의 임시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 임시 수도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곳이었음을 나타낸다.  
  
남한산성은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재위 1623-1649)가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조선의 왕들이 선대 왕릉에 참배하러 오가는 길에 거처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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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내부는 서고동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행궁은 산성 내의 서쪽 구역에 동향으로 자리하였다. 행궁은 왕의 생활 공간인 상궐과 집무공간인 하궐로 구분된다. 상궐의 중심 건물은 내행전이고, 내행전 오른쪽의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이다. 하궐의 중심 건물인 외행전은 왕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의하던 곳이었다.  
  
남한산성 내부는 서고동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행궁은 산성 내의 서쪽 구역에 동향으로 자리하였다. 행궁은 왕의 생활 공간인 상궐과 집무공간인 하궐로 구분된다. 상궐의 중심 건물은 내행전이고, 내행전 오른쪽의 좌승당은 집무용 건물이다. 하궐의 중심 건물인 외행전은 왕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의하던 곳이며, 평상시에는 광주부 유수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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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고, 방치된 채 남아 있던 일부 건물들마저 1925년 대홍수로 인해 완전히 멸실되었다. 1999년에 와서야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며, 2002년에 상궐, 2004년에 종묘, 2012년에 하궐을 다시 세웠다. 2014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이 행궁은 남한산성의 통치 경관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고, 방치된 채 남아 있던 일부 건물들마저 1925년 대홍수로 인해 완전히 멸실되었다. 1999년에 와서야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며, 2002년에 상궐, 2004년에 종묘, 2012년에 하궐을 다시 세웠다. 2014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남한산성 행궁은 남한산성의 통치경관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 정조 때 유수 홍억에 의해 지어진 한남루의 주련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poem>
 
“… 비록 원수를 갚아 부끄러움을 씻지 못할지라도 / 縱未能復讐雪耻
 
항상 그 아픔을 참고 원통한 생각을 잊지 말지어다 / 恒存着忍痛含寃”
 
</poem>
 
  
 
=='''갤러리'''==
 
=='''갤러리'''==

2022년 2월 26일 (토) 16:57 판


남한산성 행궁
Temporary Palace at Namhansanseong Fortress
경기도,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도 문화재 총람』 국가지정편-2, 2019, 169쪽.
대표명칭 남한산성 행궁
영문명칭 Temporary Palace at Namhansanseong Fortress
한자 南漢山城 行宮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로 784-29 (남한산성면, 남한산성행궁) 외 일원
국가유산 종목 사적 제480호
지정(등록)일 2007년 6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궁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87,548㎡
웹사이트 남한산성 행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행궁이란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면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에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종묘사직을 갖춘 전국 유일의 행궁으로 건립되었으며, ‘광주행궁’ 또는 ‘남한행궁’이라 불렸다. 산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에서는 볼 수 없도록 낮은 언덕에 가려진 곳에 자리를 잡은 남한산성 행궁은 지형의 높낮이에 의해 상궐과 하궐로 구분한다. 상궐은 내행전으로서 1625년에 준공한 70여 칸 건물이며, 서쪽 담에 문이 있어 좌승당으로 통하였다. 하궐은 외행전으로서 154칸 규모로 상궐과 동시에 지었고, 상궐의 삼문 밖에 있으며, 서쪽 담의 문으로는 일장각과 통한다.

남한산성 행궁이 지어지고 10년 후인 인조14년(1636년)에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전쟁 중 청군이 쏜 대포의 탄환이 외행전 기둥에 맞기도 하였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남한산성 행궁에는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영릉과 서울 헌릉, 인릉으로의 능행길에 머물렀다. 제 역할을 다하던 남한산성 행궁은 한일신협약(1907) 이후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다. 오가는 사람이 없이 방치된 채로 남아있던 몇몇 건물들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완전히 멸실되었다. 그 후 1999년에 와서야 남한산성 행궁터는 1차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2002년에 상궐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2004년에는 하궐지의 발굴조사와 좌전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고, 2012년에 하궐 복원 공사를 완료하였다. 2014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남한산성 행궁은 남한산성의 통치경관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 정조 때 유수 홍억에 의해 지어진 한남루의 주련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 비록 원수를 갚아 부끄러움을 씻지 못할지라도 / 縱未能復讐雪耻
항상 그 아픔을 참고 원통한 생각을 잊지 말지어다 / 恒存着忍痛含寃”

영문

Temporary Palace at Namhansanseong Fortress


영문 해설 내용

행궁은 왕이 궁궐을 떠나 멀리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에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1625년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1637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재위 1623-1649)가 이곳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고, 병자호란 이후에는 조선의 왕들이 선대 왕릉에 참배하러 오가는 길에 거처로 사용하였다. 남한산성 행궁은 조선시대 전국에 있던 행궁 중 유일하게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종묘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갖춘 곳이었다. 이는 이곳이 왕의 임시 처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 임시 수도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곳이었음을 나타낸다.

남한산성 내부는 서고동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행궁은 산성 내의 서쪽 구역에 동향으로 자리하였다. 행궁은 왕의 생활 공간인 상궐과 집무공간인 하궐로 구분된다. 상궐의 중심 건물은 내행전이고, 내행전 오른쪽의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이다. 하궐의 중심 건물인 외행전은 왕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의하던 곳이었다.

남한산성 행궁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고, 방치된 채 남아 있던 일부 건물들마저 1925년 대홍수로 인해 완전히 멸실되었다. 1999년에 와서야 발굴조사가 시작되었으며, 2002년에 상궐, 2004년에 종묘, 2012년에 하궐을 다시 세웠다. 2014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이 행궁은 남한산성의 통치 경관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갤러리

참고자료

  • "행궁 및 문화재 안내",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https://www.gg.go.kr/namhansansung-2/namhansan-culture-gold_g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