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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9일 (토) 21:03 판

진남대 鎭南臺
Jinnamdae Command Post
Goto.png 종합안내판: 부산진성



해설문

국문

진남대(鎭南臺)의 ‘진남’은 부산진성 남문의 이름이다. 1974년에 부산진성을 정비하면서 정면 5칸, 측면 4칸, 2층 규모의 팔작지붕 형태를 갖춘 장대(將臺)를 설치, 진남대라고 하였다.

『영남진지(嶺南鎭誌, 1895)』* 제1책을 보면 「부산진지(釜山鎭誌)」가 나오는데 당시 부산진성의 수군 편제와 관청 건물, 재정에 관한 사례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수록 내용 가운데 부산진성 장대의 내용은 자성(子城)·누대(樓臺)·육우정(六隅亭)을 설명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임인년(壬寅年, 1842)에 첨사 이희봉(李熙鳳)이 자성 안에 육우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승가(勝嘉)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또한 ‘자성은 한 진의 장대가 되고 승가정은 자성의 장대가 된다.’라고 하였다.

  • 영남진지(嶺南鎭誌): 1895년 조선 시대 최고의 행정 관청이었던 의정부에서 각 도의 수영(水營) 이하에 있는 모든 군영이 해체되기 직전에 경상도 내 31개 진성의 실태를 기록한 책으로 총 3책이 전해진다.

영문

Jinnamdae Command Post

영문 해설 내용

진남대는 부산진성 정상에 설치한 장대이다. 장대는 전쟁 또는 군사훈련 시에 대장이 성 안의 군사들을 지휘하기 위한 곳이다. 진남이라는 이름은 부산진성의 남문인 '진남문'에서 따왔으며, '남쪽을 진압한다'는 뜻이다.

부산진성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 지역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일본식으로 쌓은 석성인데, 이후 조선 수군이 사용하다가 일제강점기 도시 개발에 따라 철거되었다. 지금의 진남대는 1974년에 다시 세웠다. 진남대 옆에는 명나라 출신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기 위해 조선에 왔던 천만리 장군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