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 금당터(익산 미륵사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개별안내판 |사진= |사진출처= |대표명칭= |한자= |영문명칭= |종합안내판=익산 미륵사지 |위도= |경도= }} =='''해설문'''== ===국문=== ===영...)
 
2번째 줄: 2번째 줄:
 
|사진=
 
|사진=
 
|사진출처=
 
|사진출처=
|대표명칭=
+
|대표명칭=동원 금당터
|한자=
+
|한자=東院 金堂址
|영문명칭=
+
|영문명칭=Main Worship Hall Site of the East Courtyard
 
|종합안내판=익산 미륵사지
 
|종합안내판=익산 미륵사지
 
|위도=
 
|위도=
12번째 줄: 12번째 줄:
 
=='''해설문'''==
 
=='''해설문'''==
 
===국문===
 
===국문===
 +
금당(金堂)은 불상을 모신 법당으로 사찰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이다. 금색의 불상을 모셨다는 설과 건물 내부를 금색으로 칠했다는 설에서 명칭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삼존이 나타나자 연못을 메우고 탑과 더불어 금당을 세 곳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발굴조사에서 삼원(三院)의 가람 속에 각각 금당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곳은 삼원가람의 동원으로 금당이 있었던 곳이다. 삼원에 있는 금당 터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기단부 석재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층으로 구성된 기단의 남북쪽에 계단이 있고, 기단 내부에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초석이 놓여 있다. 초석은 높이가 약 1m 정도로 높고, 윗부분에 다른 석재나 목재를 수평으로 끼워 넣을 수 있는 홈이 있다. 높은 초석으로 인해 금당 바닥에는 빈공간이 만들어진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었다는 경주 감은사 금당 구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영문===
 
===영문===
''''''
+
'''Main Worship Hall Site of the East Courtyard'''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2021년 1월 31일 (일) 19:56 판

동원 금당터 東院 金堂址
Main Worship Hall Site of the East Courtyard
Goto.png 종합안내판: 익산 미륵사지



해설문

국문

금당(金堂)은 불상을 모신 법당으로 사찰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이다. 금색의 불상을 모셨다는 설과 건물 내부를 금색으로 칠했다는 설에서 명칭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삼존이 나타나자 연못을 메우고 탑과 더불어 금당을 세 곳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발굴조사에서 삼원(三院)의 가람 속에 각각 금당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곳은 삼원가람의 동원으로 금당이 있었던 곳이다. 삼원에 있는 금당 터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기단부 석재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층으로 구성된 기단의 남북쪽에 계단이 있고, 기단 내부에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초석이 놓여 있다. 초석은 높이가 약 1m 정도로 높고, 윗부분에 다른 석재나 목재를 수평으로 끼워 넣을 수 있는 홈이 있다. 높은 초석으로 인해 금당 바닥에는 빈공간이 만들어진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었다는 경주 감은사 금당 구조와 유사한 점이 있다.


영문

Main Worship Hall Site of the East Courtyard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