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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분은 5세기 전반에 만든 덧널무덤이다. 대성동 고분군에서 확인된 덧널무덤 중 가장 마지막 단계의 초대형 덧널무덤이다. 덧널이 심하게 도굴되어 껴묻거리가 대부분 사라졌고, 남아 있는 것도 원형을 잃은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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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구지 언덕 남동쪽 정상부에 위치한 1호분은 5세기 초의 초대형 덧널무덤이다. 도굴되어 동북쪽 모서리의 형태가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주검은 가운데에 안치하였고, 북쪽과 남쪽에 각 2인, 동쪽에 1인의 순장자를 안치했던 흔적이 확인되었다. 소의 턱뼈 조각도 함께 발견되어, 주검을 묻는 과정에서 동물로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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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곽에는 무덤 주인과 5명의 순장자가 매장되었다. 주곽에 함께 매장된 부장품으로는 철제 무기, 덩이쇠, 금동제 말띠 꾸미개, 말안장 장식, 발걸이 등이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원통 모양의 청동기 8점은 창 자루 끝부분에 붙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에는 청동 막대가 안에 들어있는 것도 있어서, 맑은 소리를 내는 주술 도구로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청동기는 금관가야의 고분 외에 일본 긴키(近畿) 지역에서도 출토되고 있으며, 금관가야와 고대 일본 사이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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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곽에서는 목과 허리를 보호하는 철제 갑옷과 투구가 출토되었다.
  
주검 주위에는 껴묻거리를 배치하였는데, 서쪽에서는 토기, 북쪽에서는 마구와 청동기류, 남쪽에서는 철제 무기류가 확인되었다. 특히 금관가야의 중요한 위세품인 원통형 청동기가 8점이나 출토되었다. 원통형 청동기는 금관가야의 고분 외에 일본 긴키(近畿) 지역에서도 출토되고 있으며, 금관가야와 고대 일본 사이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분류:문화유산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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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7일 (토) 21:21 판

김해 대성동 고분군 1호분
Goto.png 종합안내판: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해설문

국문

김해 대성동 고분군 1호분은 애구지 언덕 남동쪽 정상부에 위치한 5세기 초의 초대형 주부곽식* 덧널무덤*이다.

주곽에는 무덤 주인과 5명의 순장자가 매장되어 있다. 동쪽에서는 철제 무기가 주로 출토되었다. 동북쪽 모서리에서는 도굴로 원래의 형태가 훼손되어 있으나 2열 5겹으로 쌓아 올린 덩이쇠*가 출토되었다. 북서쪽 모서리 부근에서는 금동제 말 띠 꾸미개와 말안장 장식, 발걸이 등의 말 갖춤새가 발견되었다.

창 자루 끝부분에 붙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통 모양의 통형 동기 8점은 청동 막대가 들어 있는 것도 있어 맑은 소리를 내던 주술 도구의 역할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일본 긴키 지역에서도 출토되어 그 당시 일본 수장과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부곽에서는 목과 허리를 보호하는 철제 갑옷과 투구가 출토되어 무덤의 주인이 가야 왕국의 지배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주부곽식: 시신을 넣는 주곽과 껴묻거리를 넣는 부곽을 따로 만든 형식.
  • 덧널무덤: 무덤 속에 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나무로 짜 만든 무덤.
  • 덩이쇠: 가운데로 갈수록 잘록해지는 단순한 모양의 쇠판.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애구지 언덕 남동쪽 정상부에 위치한 1호분은 5세기 초의 초대형 덧널무덤이다. 도굴되어 동북쪽 모서리의 형태가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주곽에는 무덤 주인과 5명의 순장자가 매장되었다. 주곽에 함께 매장된 부장품으로는 철제 무기, 덩이쇠, 금동제 말띠 꾸미개, 말안장 장식, 발걸이 등이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원통 모양의 청동기 8점은 창 자루 끝부분에 붙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에는 청동 막대가 안에 들어있는 것도 있어서, 맑은 소리를 내는 주술 도구로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청동기는 금관가야의 고분 외에 일본 긴키(近畿) 지역에서도 출토되고 있으며, 금관가야와 고대 일본 사이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부곽에서는 목과 허리를 보호하는 철제 갑옷과 투구가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