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2번째 줄: | 22번째 줄: | ||
=='''해설문'''== | =='''해설문'''== | ||
− | === | + | ===국문=== |
− | + | 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는 고려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승려의 탑비 일부이다. 탑비는 선종 승려의 일생을 자세히 기록한 비석이다. | |
− | + | 이 탑비는 비석의 몸체가 없이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 주변 산기슭에서 발견되어 이곳에 보존하고 있다. 비석의 몸체가 없어 누구의 탑비인지 알 수 없으나 조각 기법이 화려하고 섬세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
− | + | 받침돌은 거북을 형상화하여 머리와 등, 턱수염, 발, 꼬리 등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고, 머릿돌은 용과 구름 문양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가운데에는 사각형의 전액(篆額)* 문양만 있고 글씨가 없어 누구의 탑비인지 알 수 없다. 현재 있는 비석의 몸체는 추정하여 조립한 것이다. | |
− | + | 주변에는 탑비와 짝을 이루었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승탑의 일부로 보이는 지붕돌과 연화대석(蓮花臺石)**이 함께 보존되고 있다. 승탑은 선종 승려의 사리를 보존하는 조형물이다. 받침돌이나 머릿돌과 마찬가지로 정교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으며, 남포오석*** 으로 조각되어 풍화가 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다. | |
− | |||
− | |||
− | + | ---- | |
+ | *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 | ||
+ | * 연꽃 문양의 대석. | ||
+ | * 웅천읍, 남포면, 청라면 등을 관할하던 옛 고을인 남포현 일대에서 나는 화산암. 돌의 재질이 단단하고 매끈하여 비석으로 많이 사용함. | ||
− | + | ===영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영문 해설 내용=== | ||
+ |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의 귀부(거북 모양 받침돌)와 이수(머릿돌)이다. 원래 어느 유명한 승려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인근의 사찰터에서 발견된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현재 귀부와 이수 사이에 있는 검은 몸돌은 새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 ||
+ | 발을 내밀어 웅크리고 있는 자세의 귀부는 방형의 받침돌과 한 돌로 만들어졌다. 얼굴은 부리부리한 눈과 굵은 눈썹이 강조되어 있고, 입가에 지느러미와 수염 등이 표현되어 있다. 등에는 귀갑문이 장식되어 있으며, 등 가운데 비를 세우는 비좌는 구름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이수에는 용과 구름 문양이 가득하다. 앞면 가운데 있는 사등분된 사각형은 원래 비의 이름을 새기는 곳인데, 새긴 글자가 없어 비석의 주인공을 알 수 없다. | ||
=='''참고자료'''== | =='''참고자료'''== | ||
93번째 줄: | 55번째 줄: | ||
[[분류:귀부]] | [[분류:귀부]] | ||
[[분류:이수]] | [[분류:이수]] | ||
+ | [[분류:2020 영문집필]] |
2020년 9월 26일 (토) 05:02 판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 |
|
대표명칭 |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 |
---|---|
한자 | 保寧水芙里龜趺및이首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 |
지정(등록)일 | 1974년 9월 1일 |
분류 | 유물/불교조각/석조/귀부이수 |
시대 | 고려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는 고려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승려의 탑비 일부이다. 탑비는 선종 승려의 일생을 자세히 기록한 비석이다.
이 탑비는 비석의 몸체가 없이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만 주변 산기슭에서 발견되어 이곳에 보존하고 있다. 비석의 몸체가 없어 누구의 탑비인지 알 수 없으나 조각 기법이 화려하고 섬세한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받침돌은 거북을 형상화하여 머리와 등, 턱수염, 발, 꼬리 등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고, 머릿돌은 용과 구름 문양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가운데에는 사각형의 전액(篆額)* 문양만 있고 글씨가 없어 누구의 탑비인지 알 수 없다. 현재 있는 비석의 몸체는 추정하여 조립한 것이다.
주변에는 탑비와 짝을 이루었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 승탑의 일부로 보이는 지붕돌과 연화대석(蓮花臺石)**이 함께 보존되고 있다. 승탑은 선종 승려의 사리를 보존하는 조형물이다. 받침돌이나 머릿돌과 마찬가지로 정교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으며, 남포오석*** 으로 조각되어 풍화가 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다.
- 비의 명칭을 새긴 부분.
- 연꽃 문양의 대석.
- 웅천읍, 남포면, 청라면 등을 관할하던 옛 고을인 남포현 일대에서 나는 화산암. 돌의 재질이 단단하고 매끈하여 비석으로 많이 사용함.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의 귀부(거북 모양 받침돌)와 이수(머릿돌)이다. 원래 어느 유명한 승려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인근의 사찰터에서 발견된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현재 귀부와 이수 사이에 있는 검은 몸돌은 새로 만들어 넣은 것이다.
발을 내밀어 웅크리고 있는 자세의 귀부는 방형의 받침돌과 한 돌로 만들어졌다. 얼굴은 부리부리한 눈과 굵은 눈썹이 강조되어 있고, 입가에 지느러미와 수염 등이 표현되어 있다. 등에는 귀갑문이 장식되어 있으며, 등 가운데 비를 세우는 비좌는 구름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이수에는 용과 구름 문양이 가득하다. 앞면 가운데 있는 사등분된 사각형은 원래 비의 이름을 새기는 곳인데, 새긴 글자가 없어 비석의 주인공을 알 수 없다.
참고자료
- 보령수부리귀부및이수(保寧水芙里龜趺및이首),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400320000
- 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保寧水芙里龜趺─螭首),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B3%B4%EB%A0%B9%20%EC%88%98%EB%B6%80%EB%A6%AC%20%EA%B7%80%EB%B6%80%20%EB%B0%8F%20%EC%9D%B4%EC%88%98&ridx=0&tot=7313
- "보령 충남여행: 보령 수부리 단원사(영수암)", 산들애길 문화여행 블로그, 발길따라 함 가보는 여행, 네이버 블로그, 2018.12.25. https://blog.naver.com/sockjung/221426821337 --> 최근 비신 끼워넣은 모습.
- 단원사였으나 최근에 이름을 영수암으로 바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