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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석지리 지석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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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0380000 고성 석지리 지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0380000 고성 석지리 지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고성 석지리 지석묘
 
|대표명칭=고성 석지리 지석묘
|영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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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Dolmens in Seokji-ri, Goseong
 
|한자=固城 石芝里 支石墓
 
|한자=固城 石芝里 支石墓
 
|주소=경상남도 고성군
 
|주소=경상남도 고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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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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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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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임을 나타낸다. 지석묘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 주로 발견되며 특히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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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리 마을 앞의 들판에는 지석묘 5기가 사방 10m 이내에 모여 있으며, 주변에는 논이 있다. 석지리 지석묘는 지하에 돌널을 바둑판 형식으로 놓은 모습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4~5개의 돌이 덮개돌을 고이고 있다. 주민들은 이 지석묘를 수로왕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초고====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로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주로 청동기시대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석지리 일대에는 봉현천을 따라 10여기의 지석묘가 열 지어 분포하고 있는데, 이곳 석지리 마을 앞들에는 5기의 지석묘가 사방 10m 안에 모여 있다.
 
  
한반도의 지석묘는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평평한 덮개돌을 올린 탁자식 지석묘와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석지리의 지석묘는 지하에 돌방을 만든 바둑판식 지석묘로서 덮개돌은 납작한 판 모양의 점판암(粘板岩)이다. 5기의 지석묘 중 가장 큰 것은 길이 2.5m, 너비 1.6m이다. 두께 0.9m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4∼5개의 받침돌이 고여 있다. 1980년대 이 주변을 경작지로 바꾸는 작업 중에 돌널무덤[石棺墓] 여러 기가 발견되었으며, 그 안에서 토기와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
1980년대에 경지를 정리할 때 지석묘와 함께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무덤 형태인 돌널무덤도 여러 기가 발견되었다. 돌널무덤 안에서는 민무늬토기와 간돌화살촉 등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석지리 야산 남쪽의 양촌마을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확인되었고, 음촌마을에도 지석묘 4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살았음을 알 수 있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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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는 세계에서 지석묘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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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mens in Seokji-ri, Goseong'''
  
석지리 일대에는 봉현천을 따라 10여 기의 지석묘가 열 지어 분포하고 있는데, 이곳 석지리 마을 앞들에는 5기의 지석묘가 사방 10m 안에 모여 있다.
 
  
이곳의 지석묘는 모두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지석묘이다. 5기의 지석묘 중 가장 큰 것은 덮개돌의 길이가 2.5m, 너비는 1.6m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4~5개의 받침돌이 고여 있다. 1980년대 이 주변을 경작지로 바꾸는 작업 중에 돌널무덤 여러 기가 발견되었으며, 그 안에서 토기와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자문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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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분야별 자문위원 1
+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이다. 고인돌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분포하고 있는데,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이다.
#*거석 구조물->거석 기념물
 
#분야별 자문위원 2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2차 수정====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이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는 세계에서 지석묘가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이다.
 
 
 
석지리 일대에는 봉현천을 따라 10여 기의 지석묘가 열 지어 분포하고 있는데, 이곳 석지리 마을 앞 들판에는 5기의 지석묘가 사방 10m 안에 모여 있다.
 
 
 
이곳의 지석묘는 모두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지석묘이다. 5기의 지석묘 중 가장 큰 것은 덮개돌의 길이가 2.5m, 너비는 1.6m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4~5개의 받침돌이 고여 있다. 1980년대 이 주변을 경작지로 바꾸는 작업 중에 돌널무덤 여러 기가 발견되었으며, 그 안에서 토기와 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문맥요소'''==
 
===Nodes===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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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리 마을 앞에는 지석묘 5기가 사방 10m 이내에 모여 있으며, 주변에는 논이 있다. 모두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4-5개의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지석묘이다.
  
 +
1980년대 주변 경지를 정리하던 중,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인 돌널무덤 여러 기가 발견되었다. 무덤 안에서는 민무늬토기와 간돌화살촉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석지리 인근의 다른 마을들에서도 지석묘와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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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시도기념물]]
 
[[분류:시도기념물]]
 
[[분류:지석묘]]
 
[[분류:지석묘]]
 +
[[분류:2020 영문집필]]

2020년 6월 27일 (토) 08:03 판


고성 석지리 지석묘
Dolmens in Seokji-ri, Goseong
고성 석지리 지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성 석지리 지석묘
영문명칭 Dolmens in Seokji-ri, Goseong
한자 固城 石芝里 支石墓
주소 경상남도 고성군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38호
지정일 1977년 12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지석묘
수량/면적 5기/1015㎡
웹사이트 고성 석지리 지석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임을 나타낸다. 지석묘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서 주로 발견되며 특히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석지리 마을 앞의 들판에는 지석묘 5기가 사방 10m 이내에 모여 있으며, 주변에는 논이 있다. 석지리 지석묘는 지하에 돌널을 바둑판 형식으로 놓은 모습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덮개돌 아래에는 4~5개의 돌이 덮개돌을 고이고 있다. 주민들은 이 지석묘를 수로왕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80년대에 경지를 정리할 때 지석묘와 함께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무덤 형태인 돌널무덤도 여러 기가 발견되었다. 돌널무덤 안에서는 민무늬토기와 간돌화살촉 등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석지리 야산 남쪽의 양촌마을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확인되었고, 음촌마을에도 지석묘 4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에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영문

Dolmens in Seokji-ri, Goseong


영문 해설 내용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구조물이다. 고인돌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분포하고 있는데,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이다.

석지리 마을 앞에는 지석묘 5기가 사방 10m 이내에 모여 있으며, 주변에는 논이 있다. 모두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4-5개의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 지석묘이다.

1980년대 주변 경지를 정리하던 중,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형태인 돌널무덤 여러 기가 발견되었다. 무덤 안에서는 민무늬토기와 간돌화살촉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석지리 인근의 다른 마을들에서도 지석묘와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