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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량산성은 경상남도 함양군과 전라남도 남원시의 경계지점인 팔량치(八良峙)의 능선을 따라 쌓은 성이다. 신라시대에 처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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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량치는 ‘장정 80명이 모여야 넘어갈 수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그만큼 산세가 험하고 숲이 울창해 적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고려 말에 왜구들이 함양의 사근산성을 함락시키고 전라도로 진격하려 하였으나,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이곳의 산세를 이용해 물리쳤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팔령치’라고 불렀기 때문에 산성의 이름도 팔령산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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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둘레는 원래 약 500m 정도였다고 하나 지금은 서북쪽 성벽 300m만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성벽은 자연석과 다듬은 돌을 함께 사용해 벽돌을 쌓듯이 쌓아 올렸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0년 4월 29일 (수) 15:37 판


함양팔령산성
함양 팔령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팔령산성
한자 咸陽八嶺山城
국가유산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72호
지정(등록)일 1997년 12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18,645㎡
웹사이트 함양 팔령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함양군과 남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팔령치에 위치한 이 성은 산 정상 부분에 있는 골짜기를 안고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이 산성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지리산의 줄기인 덕유산과 백운산이 연결된 곳으로, 지리상 방어의 요충지이다.

특히 산이 높고 숲이 울창해 적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고려 말에 왜구들이 함양의 사근산성(沙斤山城)을 함락시키고 전라도 운봉으로 진격하는 것을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의 산세를 이용해 물리쳤다고 한다.

이 산성의 성벽의 길이는 약 500m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서북쪽 성벽 300m만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무너져 버렸다. 성벽은 자연석과 다듬은 돌을 함께 사용해 벽돌 쌓듯이 쌓아 올렸다. 성의 서쪽에는 성 밖에서 안쪽으로 오목하게 쌓아올린 성문의 흔적이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산성은 경상남도 함양군과 전라남도 남원시의 경계지점인 팔량치(八良峙)에 있는 성산의 9부능선을 따라 쌓은 것으로 신라시대에 축성되었다. 팔량치는 장정 80명이 모여야 넘어갈 수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그만큼 산세가 험했는데, 이 지역에서는 “팔령치”라고 불렀기 때문에 팔령산성(八嶺山城)이 된 것이다.

고려 말과 임진왜란 때 왜병이 함양의 사근산성(沙斤山城)을 함락시키고 운봉으로 진격하는 것을 이곳에서 참패시켰다고 전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성의 둘레는 약 500m, 양호한 곳의 높이는 약 3m이다. 현재 성벽은 거의 무너져 있으나 서북쪽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성벽은 자연석과 다듬은 돌을 함께 사용해 벽돌을 쌓듯이 쌓아 올렸다. 서쪽 문터는 성 밖으로 작은 성처럼 쌓아 올려 후대에 고쳐 쌓은 것으로 보인다.

1차 수정

팔량산성은 경상남도 함양군과 전라남도 남원시의 경계지점인 팔량치(八良峙)의 능선을 따라 쌓은 성이다. 신라시대에 처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팔량치는 ‘장정 80명이 모여야 넘어갈 수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그만큼 산세가 험하고 숲이 울창해 적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고려 말에 왜구들이 함양의 사근산성을 함락시키고 전라도로 진격하려 하였으나,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이곳의 산세를 이용해 물리쳤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팔령치’라고 불렀기 때문에 산성의 이름도 팔령산성이 되었다.

성의 둘레는 원래 약 500m 정도였다고 하나 지금은 서북쪽 성벽 300m만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성벽은 자연석과 다듬은 돌을 함께 사용해 벽돌을 쌓듯이 쌓아 올렸다.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함양군 산천조.

→ 이 성의 유래와 위치 및 신라시대에 축성된 산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