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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북서쪽 부장리의 낮은 언덕에 위치한 이 유적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조성된 집터와 무덤 등이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언덕 남쪽 경사면의 고분 13기가 분포하는 지역이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들은 백제시대인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중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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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기의 무덤은 모두 흙으로 분구를 쌓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한 구조이다. 분구는 가장 높은 것이 2m 정도이며, 하나의 분구에 10기의 매장시설이 조성된 무덤도 있다. 대부분 목곽 또는 목관을 사용한 움무덤이고, 일부 독무덤도 있다. 분구 주위에는 사각형으로 도랑을 돌렸는데, 한 변의 길이가 20~40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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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분군에서는 백제 양식의 토기, 철기, 장신구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금동관모, 금동신발, 금동귀고리, 철제자루솥 등은 백제의 수도인 한성(지금의 서울 지역)에서 온 최상급 위세품으로, 이 무덤들이 서산 지역 최상층의 무덤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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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리 고분군은 분구묘의 원형을 잘 지니고 있어 분구묘 축조과정과 고분군 형성과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또한 4-5세기 백제 고분군 가운데 위세품의 출토 수량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당시 이 지역 지배세력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2023년 4월 18일 (화) 14:15 판


서산 부장리 고분군
Ancient Tombs in Bujang-ri, Seosan
서산 부장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서산 부장리 고분군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Bujang-ri, Seosan
한자 瑞山 富長里 古墳群
주소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음암로 499 (부장리)
지정번호 사적 제475호
지정일 2006년 11월 6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시대 백제
수량/면적 14,108㎡
웹사이트 서산 부장리 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가야산에서 내려 온 낮은 언덕에 자리한 백제 시대 분구묘 유적이다. 부장리에서 2004~2006년 3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조선시대의 집터와 무덤 등이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남쪽 경사면의 분구묘 13기가 분포하는 지역을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분구묘는 한반도 중서부지역과 호남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마한 세력의 무덤으로, 흙으로 분구를 쌓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하는 매장시설을 만들고 분구 주위에는 도랑 시설인 주구를 돌렸다. 부장리 분구묘는 주구의 길이가 20~40m이고, 분구는 현재 가장 높은 것이 2m 정도 낮은 편이다. 하나의 분구묘 안에 매장시설은 적게는 1기에서 많게는 10기로 독무덤(옹관묘) 몇 기를 제외하면 모두 덧널(목곽) 또는 널(목관)이 사용된 움무덤(토광묘)이다.

부장리 분구묘에서는 백제 양식의 토기, 철기, 장신구 등의 유물이 나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중후반에 분구묘가 축조된 것으로 본다. 특히 금동관모, 금동신발, 금동귀고리, 철제자루솥 등은 5세기 한성백제 시기에 중앙정부가 내려준 최상급 위세품*으로 서산지역 최상층의 무덤임을 알려준다.

부장리 분구묘는 분구묘 원형을 잘 지니고 있어 분구묘 축조과정과 고분군 형성과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며, 한성백제 시기 고분군 가운데 위세품 수량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당시 마한계통인 서산지역 지배세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가야산 북서쪽 부장리의 낮은 언덕에 위치한 이 유적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조성된 집터와 무덤 등이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언덕 남쪽 경사면의 고분 13기가 분포하는 지역이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들은 백제시대인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중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13기의 무덤은 모두 흙으로 분구를 쌓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한 구조이다. 분구는 가장 높은 것이 2m 정도이며, 하나의 분구에 10기의 매장시설이 조성된 무덤도 있다. 대부분 목곽 또는 목관을 사용한 움무덤이고, 일부 독무덤도 있다. 분구 주위에는 사각형으로 도랑을 돌렸는데, 한 변의 길이가 20~40m 정도이다.

이 고분군에서는 백제 양식의 토기, 철기, 장신구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금동관모, 금동신발, 금동귀고리, 철제자루솥 등은 백제의 수도인 한성(지금의 서울 지역)에서 온 최상급 위세품으로, 이 무덤들이 서산 지역 최상층의 무덤임을 알려준다.

부장리 고분군은 분구묘의 원형을 잘 지니고 있어 분구묘 축조과정과 고분군 형성과정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또한 4-5세기 백제 고분군 가운데 위세품의 출토 수량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당시 이 지역 지배세력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