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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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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유적은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 배나무골 뒤편의 산봉우리(245m)에 있다. 동·서를 축으로 능선 정상에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규모는 동서 8m, 남북 5m, 둘레 25m가량이다. 유적의 남·서쪽과 북쪽은 자연 암반에 의지하여 만들었는데, 현재는 대부분 무너져 내린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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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유적은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 배나무골 뒤편의 산봉우리(245m)에 있다. 동·서를 축으로 능선 정상에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규모는 동서 8m, 남북 5m, 둘레 25m 가량이다. 유적의 남·서쪽과 북쪽은 자연 암반에 의지하여 만들었는데, 현재는 대부분 무너져 내린 상태이다.  
  
 
국사봉에서는 토마(土馬: 흙으로 만든 말)를 비롯하여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 토마가 발견됨에 따라 제사 유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토마 등을 사용한 제사 의례 행위는 산성과 같은 관방(關防: 국경을 지킴)* 유적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군사 유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사봉에서는 토마(土馬: 흙으로 만든 말)를 비롯하여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 토마가 발견됨에 따라 제사 유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토마 등을 사용한 제사 의례 행위는 산성과 같은 관방(關防: 국경을 지킴)* 유적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군사 유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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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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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은 무수동에 있는 해발 245m 높이의 국사봉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국사봉이라는 이름은 한 국사가 이 봉우리에 올라가서 사방의 지세를 내려다보니 형국이 무척 좋아서 춤을 추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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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에서는 산신에게 헌납하기 위해 땅에 묻은 토마(土馬)를 비롯하여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 유적을 제사 유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토마를 사용하는 제사 의례는 산성 등에서도 이루어졌기 때문에 군사유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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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제사가 거행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1950년대 무렵까지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신성시하였다고 한다. 혹독한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국사봉 꼭대기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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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적에는 석축 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부분 무너져 내린 상태이며, 규모는 동서 8m, 남북 5m, 둘레 25m 가량이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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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무수동 국사봉, 한국민속신앙사전, 국립민속박물관.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1958
  
  

2022년 6월 3일 (금) 00:20 판


국사봉 유적
대표명칭 국사봉 유적
한자 國師峰 遺蹟
주소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 산30-1번지
국가유산 종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8호
지정(등록)일 1995년 5월 27일
분류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유적분포지/유적분포지
관리자 안동권씨각회종중
수량/면적 둘레25m
웹사이트 국사봉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국사봉유적은 대전광역시 중구 무수동 배나무골 뒤편의 산봉우리(245m)에 있다. 동·서를 축으로 능선 정상에 돌로 쌓아 만들었는데, 규모는 동서 8m, 남북 5m, 둘레 25m 가량이다. 유적의 남·서쪽과 북쪽은 자연 암반에 의지하여 만들었는데, 현재는 대부분 무너져 내린 상태이다.

국사봉에서는 토마(土馬: 흙으로 만든 말)를 비롯하여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 토마가 발견됨에 따라 제사 유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토마 등을 사용한 제사 의례 행위는 산성과 같은 관방(關防: 국경을 지킴)* 유적의 특징이라는 점에서 군사 유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사봉은 국사(國師: 임금의 스승)라는 도승이 이 봉우리에 올라가서 사방의 지세를 내려다보니 형국이 무척 좋아서 춤을 추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을 신성시하는 관념은 1950년대 전후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혹독한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국사봉 꼭대기에 올라 땔나무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불을 지피며 비가 내리기를 청하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유적은 무수동에 있는 해발 245m 높이의 국사봉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국사봉이라는 이름은 한 국사가 이 봉우리에 올라가서 사방의 지세를 내려다보니 형국이 무척 좋아서 춤을 추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국사봉에서는 산신에게 헌납하기 위해 땅에 묻은 토마(土馬)를 비롯하여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 유적을 제사 유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토마를 사용하는 제사 의례는 산성 등에서도 이루어졌기 때문에 군사유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곳에서 제사가 거행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1950년대 무렵까지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신성시하였다고 한다. 혹독한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국사봉 꼭대기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 유적에는 석축 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부분 무너져 내린 상태이며, 규모는 동서 8m, 남북 5m, 둘레 25m 가량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