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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자는 월성 북쪽의 해자 7기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먼저 발굴되었다. 이 해자의 최대 길이는 51.1m이며 최대 폭은 25m이다. 성벽과 맞닿은 곳은 지형에 맞게 곡선을 이루고 있다. 바깥쪽은 처음에는 ‘ㄱ’ 자 모양으로 만들었다가, 세 번 고쳐 지으면서 모서리 부분이 점차 곡선으로 변하고 규모도 작아졌다. 월성 동쪽에 치우쳐 있어 동궁과 월지 유적에 가까우며, 돌을 쌓은 방식 또한 월지의 방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동궁과 월지가 만들어질 무렵 이 석축 해자도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에 월성 해자를 복원할 때 이 석축 해자가 가장 먼저 복원되었으며, 처음부터 담수 해자로 만들어졌다.
 
 
  
 
[[분류:문화유산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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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3일 (수) 15:01 판

석축 해자 石築 垓子
Goto.png 종합안내판: 경주 월성



해설문

국문

석축 해자란 돌을 쌓아 만든 해자를 말한다. 이 석축 해자는 월성 북측의 해자들 중 가장 먼저 발굴되었다. 이 해자의 최대 변은 51.1m이며 최대 폭은 25m이다. 성벽과 맞닿은 곳은 지형에 맞게 곡선을 이루고 있으나, 바깥쪽은 ‘ㄱ’ 자 모양이다. 그러나 세 번 고쳐 지으면서 ‘ㄱ’의 모서리 부분이 점차 곡선으로 변하고 규모도 작아졌다. 월성 동쪽에 치우쳐 있어 동궁과 월지 유적에 가까우며, 돌을 쌓은 방식 또한 월지의 방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동궁과 월지가 만들어질 무렵 이 석축 해자도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축 해자는 가장 먼저 복원되었으며, 처음부터 담수 해자*로 정비되었다.


  • 담수 해자: 물을 담는 해자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해자는 월성 북쪽의 해자 7기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장 먼저 발굴되었다. 이 해자의 최대 길이는 51.1m이며 최대 폭은 25m이다. 성벽과 맞닿은 곳은 지형에 맞게 곡선을 이루고 있다. 바깥쪽은 처음에는 ‘ㄱ’ 자 모양으로 만들었다가, 세 번 고쳐 지으면서 모서리 부분이 점차 곡선으로 변하고 규모도 작아졌다. 월성 동쪽에 치우쳐 있어 동궁과 월지 유적에 가까우며, 돌을 쌓은 방식 또한 월지의 방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동궁과 월지가 만들어질 무렵 이 석축 해자도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에 월성 해자를 복원할 때 이 석축 해자가 가장 먼저 복원되었으며, 처음부터 담수 해자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