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파두리 내성(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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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파두리성의 내성은 둘레 약 700m의 장방형 토성으로, 삼별초의 지휘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서는 여러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식수와 용수를 공급하던 | + | 항파두리성의 내성은 둘레 약 700m의 장방형 토성으로, 삼별초의 지휘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서는 여러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식수와 용수를 공급하던 샘들이 있었다고 한다. |
− |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기와 조각, 자기 조각, 청동 수저 등이 있다. 특히 ‘고내촌 신축 2년’이라고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신축 2년인 1241년에 고내촌이라는 곳에서 제작된 기와가 이곳에 있던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 |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기와 조각, 자기 조각, 청동 수저 등이 있다. 특히 ‘고내촌 신축 2년’이라고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신축 2년인 1241년에 고내촌이라는 곳에서 제작된 기와가 이곳에 있던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참고자료'''== | =='''참고자료'''== |
2021년 8월 10일 (화) 11:09 판
항파두리 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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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 |
해설문
국문
항파두리성의 내성은 삼별초의 지휘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며, 둘레 약 750m의 장방형 토성이다. 성 안에서는 여러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식수와 용수를 공급하던 샘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기와 조각, 자기 조각, 청동 수저 등이 있다. 특히 ‘고내촌 신축 2년’이라고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신축 2년인 1241년에 고내촌이라는 곳에서 제작된 기와가 이곳에 있던 삼별초의 관아 시설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항파두리성의 내성은 둘레 약 700m의 장방형 토성으로, 삼별초의 지휘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서는 여러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식수와 용수를 공급하던 샘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기와 조각, 자기 조각, 청동 수저 등이 있다. 특히 ‘고내촌 신축 2년’이라고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신축 2년인 1241년에 고내촌이라는 곳에서 제작된 기와가 이곳에 있던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 제주항파두리항몽유적지, 『문화재대관 – 사적 제2권(증보판)』, 2010, 문화재청, 904~909쪽.
- 제주 항파두리 항몽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903960000
- 제주항파두리항몽유적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1473
- 삼별초항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6605
- 항파두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2414
- 항파두리성 내성, 문화원형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81910&cid=49333&categoryId=49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