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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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전석탑(模塼石塔):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 돌을 벽돌모양으로 가공하여 쌓거나 모서리기둥을 생략하고 지붕돌의 윗면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전탑의 형태를 따른 탑 | *모전석탑(模塼石塔):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 돌을 벽돌모양으로 가공하여 쌓거나 모서리기둥을 생략하고 지붕돌의 윗면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전탑의 형태를 따른 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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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Stone Brick Pagoda of Bunhwangsa Temple, Gyeongju'''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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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 +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
− | 이 탑은 | + | 이 탑은 흑회색의 안산암을 사각형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것으로, 신라시대인 634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널찍한 1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연꽃 모양의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돌로 만든 사자상을 두었다. 1층 몸돌 각 면에 화강암으로 문을 만들고, 문 양옆에 금강역사상을 배치하였다. |
− | + | 지금은 3층이지만 원래 7층 혹은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분적으로 무너지고 탑 위에 풀이 자란 채로 남아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총독부가 해체 보수하였다. | |
− | + | 보수 당시 탑 안에서 녹유리 조각, 구슬, 가위, 금·은바늘 등이 담겨 있는 돌로 만든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사리함에서 중국 송나라에서 12세기 초에 사용하던 동전이 발견되어, 고려시대인 12세기에도 탑을 수리했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 타이완과 오키나와 등지에 서식하는 조개의 껍질이 함께 발견되어 당시 신라의 대외교역 범위를 추정하는 단서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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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15년 보수되기 이전의 모습 참고 -> https://namu.wiki/w/%EB%B6%84%ED%99%A9%EC%82%A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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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3일 (토) 18:03 판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Stone Brick Pagoda of Bunhwangsa Temple,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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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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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one Brick Pagoda of Bunhwangsa Temple, Gyeongju |
한자 | 慶州 芬皇寺 模塼石塔 |
주소 |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 (구황동) |
국가유산 종목 | 국보 제30호 |
지정(등록)일 | 1962년 12월 2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
시대 | 신라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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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3년(634)에 세웠다하므로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이다. 흑회색의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이다. 지금은 3층이지만 원래 7층 혹은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5년 일본인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수리하였다.
바닥돌은 자연석으로 널찍하게 쌓았고 네 모서리에 사자상을 두었다. 1층은 면마다 화강암으로 문을 만들고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을 2구씩 배치했다. 2층과 3층은 높이가 현격하게 줄었고, 지붕은 아래위쪽 모두 계단식으로 쌓았다. 탑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연꽃장식이 있다.
1915년 수리할 때 2층과 3층 사이에서 돌사리함이 발견되었다. 함에는 녹유리 조각, 구슬, 가위, 금·은바늘과 은함, 숭녕통보(崇寧通寶), 상평오수전(常平五銖錢) 등이 담겨있었다. 이 동전으로 보아 고려 숙종∼예종 때인 12세기 초에도 탑을 수리했음을 알 수 있고, 타이완, 오키나와 등지에 서식하는 패각류 조개 껍질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 신라의 대외교역에 대한 단서가 된다.
- 모전석탑(模塼石塔): 벽돌탑을 모방한 석탑. 돌을 벽돌모양으로 가공하여 쌓거나 모서리기둥을 생략하고 지붕돌의 윗면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전탑의 형태를 따른 탑
영문
Stone Brick Pagoda of Bunhwangsa Temple, Gyeongju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탑은 흑회색의 안산암을 사각형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것으로, 신라시대인 634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널찍한 1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연꽃 모양의 머리장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돌로 만든 사자상을 두었다. 1층 몸돌 각 면에 화강암으로 문을 만들고, 문 양옆에 금강역사상을 배치하였다.
지금은 3층이지만 원래 7층 혹은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분적으로 무너지고 탑 위에 풀이 자란 채로 남아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조선총독부가 해체 보수하였다.
보수 당시 탑 안에서 녹유리 조각, 구슬, 가위, 금·은바늘 등이 담겨 있는 돌로 만든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사리함에서 중국 송나라에서 12세기 초에 사용하던 동전이 발견되어, 고려시대인 12세기에도 탑을 수리했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 타이완과 오키나와 등지에 서식하는 조개의 껍질이 함께 발견되어 당시 신라의 대외교역 범위를 추정하는 단서가 되었다.
- 1915년 보수되기 이전의 모습 참고 -> https://namu.wiki/w/%EB%B6%84%ED%99%A9%EC%82%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