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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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의천)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1104년(숙종 9년)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식(金富軾)의 형인 김부일(金富佾)이 짓고, 글씨는 고려 인종 때 서예가인 이원부(李元符)가 썼다. 1125년(인종 3년)에 만들어진 이 비는 조각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돌 등에서 고려 중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의천)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1104년(숙종 9년)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식(金富軾)의 형인 김부일(金富佾)이 짓고, 글씨는 고려 인종 때 서예가인 이원부(李元符)가 썼다. 1125년(인종 3년)에 만들어진 이 비는 조각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돌 등에서 고려 중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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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낙진은 고려의 국사였던 의천(1055-1101)의 제자로, 1085년 의천을 따라 송나라에 가서 불법을 공부하고 1086년에 귀국하였다. 1114년 왕사가 되었으며, 개경 귀법사에서 입적하였다. 예종(재위 1105-1122)이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례를 지원하였다. | |
+ | 탑비는 1125년 합천 반야사에 세워졌다. 절이 폐사된 후 반야사지에 남아있었는데, 196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 ||
− | + |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에 새겨진 비문은 낙진의 행적과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뒷면에는 문도(門徒)를 열거하였다. 비문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1075-1151)의 형인 김부일(1071-1132)이 지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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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hanjun105300/221817105861 | *https://blog.naver.com/hanjun105300/221817105861 |
2020년 4월 15일 (수) 05:33 판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Stele of Royal Preceptor Wongyeong from Banyasa Temple Site, Hap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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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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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ele of Royal Preceptor Wongyeong from Banyasa Temple Site, Hapcheon |
한자 | 陜川 般若寺址 元景王師碑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산1-1 |
국가유산 종목 | 보물 제128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시대 | 고려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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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로,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비는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징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의천)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1104년(숙종 9년)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식(金富軾)의 형인 김부일(金富佾)이 짓고, 글씨는 고려 인종 때 서예가인 이원부(李元符)가 썼다. 1125년(인종 3년)에 만들어진 이 비는 조각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돌 등에서 고려 중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영문
Stele of Royal Preceptor Wongyeong from Banyasa Temple Site, Hapcheon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낙진(1050-1119)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탑비이다.
낙진은 고려의 국사였던 의천(1055-1101)의 제자로, 1085년 의천을 따라 송나라에 가서 불법을 공부하고 1086년에 귀국하였다. 1114년 왕사가 되었으며, 개경 귀법사에서 입적하였다. 예종(재위 1105-1122)이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례를 지원하였다.
탑비는 1125년 합천 반야사에 세워졌다. 절이 폐사된 후 반야사지에 남아있었는데, 196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에 새겨진 비문은 낙진의 행적과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뒷면에는 문도(門徒)를 열거하였다. 비문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1075-1151)의 형인 김부일(1071-1132)이 지었다.
참고 자료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01280000,38&pageNo=1_1_1_0
- https://blog.naver.com/hanjun105300/221817105861
-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640 - 원경왕사 설명
-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459#0BJz - 반야사 터
- https://younghwan12.tistory.com/2120 - 보호각 모습
- 합천 해인사 정밀실측조사보고서 상, 문화재청, 2015. pp.305-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