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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서당은 조선시대의 문신 운천 김용雲川 金涌, 1557~1620을 기리기 위해 1921년에 건립되었다. 원래 철종 4년(1853) 안동 유림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김용을 제향하기 위해 임호서원을 세웠으나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에 따라 임호서원이 헐린 후, 임천서원臨川書院의 옛터인 이곳에 임호서당을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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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의 강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백하 김대락白下 金大洛이 살던 집의 사랑채였다. 1907년 안동 지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 기관인 협동학교가 세워지자, 김대락은 자신의 집 사랑채를 교실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김대락은 만주로 망명하면서 많은 재산을 처분하였고, 그의 집 사랑채는 임호서당의 강당으로 옮겨 지어졌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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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서당은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뜻깊은 건물이며, 김용의 후손인 의성김씨 귀봉파의 정신적, 문화적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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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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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서당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용(1557-1620)을 기리기 위해 1921년에 건립되었다. 원래 1853년 안동 유림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김용을 제향하기 위해 임호서원을 설립하였으나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고, 이곳에 임호서당을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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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의 강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김대락(1845-1914)이 살던 집의 사랑채였다. 1907년 안동 지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 기관인 협동학교가 세워지자, 김대락은 자신의 집 사랑채를 교실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김대락은 만주로 망명하면서 많은 재산을 처분하였고, 그의 집 사랑채는 임호서당의 강당으로 옮겨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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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서당은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뜻깊은 건물이며, 김용의 후손인 의성김씨 귀봉파의 정신적, 문화적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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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건번호 건축-21-8-3 3. 안동 임호서당 도지정문화재 지정대상 선정심의”, 『2021년도 문화재위원회 제8차 건축문화재분과 회의록』, 경상북도 문화유산과, 202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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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임호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7018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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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7일 (월) 13:09 기준 최신판


안동 임호서당
안동 임호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대표명칭 안동 임호서당
한자 安東 臨湖書堂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길 305
지정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일 2023년 10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당
시대 조선시대~일제강점기
수량/면적 1곽(1,030㎡)
웹사이트 안동 임호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임호서당은 조선시대의 문신 운천 김용雲川 金涌, 1557~1620을 기리기 위해 1921년에 건립되었다. 원래 철종 4년(1853) 안동 유림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김용을 제향하기 위해 임호서원을 세웠으나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에 따라 임호서원이 헐린 후, 임천서원臨川書院의 옛터인 이곳에 임호서당을 다시 세웠다.

서당의 강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백하 김대락白下 金大洛이 살던 집의 사랑채였다. 1907년 안동 지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 기관인 협동학교가 세워지자, 김대락은 자신의 집 사랑채를 교실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김대락은 만주로 망명하면서 많은 재산을 처분하였고, 그의 집 사랑채는 임호서당의 강당으로 옮겨 지어졌다.

임호서당은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뜻깊은 건물이며, 김용의 후손인 의성김씨 귀봉파의 정신적, 문화적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임호서당은 조선시대의 문신 김용(1557-1620)을 기리기 위해 1921년에 건립되었다. 원래 1853년 안동 유림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김용을 제향하기 위해 임호서원을 설립하였으나 19세기 후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고, 이곳에 임호서당을 다시 세웠다.

서당의 강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김대락(1845-1914)이 살던 집의 사랑채였다. 1907년 안동 지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 기관인 협동학교가 세워지자, 김대락은 자신의 집 사랑채를 교실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김대락은 만주로 망명하면서 많은 재산을 처분하였고, 그의 집 사랑채는 임호서당의 강당으로 옮겨 지어졌다.

임호서당은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뜻깊은 건물이며, 김용의 후손인 의성김씨 귀봉파의 정신적, 문화적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