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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중}}
 
 
{{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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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현포보수로및중건불망비.jpg
 
|사진=현포보수로및중건불망비.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0820000 현포보수로및중건불망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0820000 현포보수로및중건불망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현포보 수로 및 중건불망비
 
|대표명칭=현포보 수로 및 중건불망비
|영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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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Hyeonpobo Irrigation Channel and Stele for Remembrance of Its Construction
 
|한자=玄圃洑 水路 및 重建不忘碑
 
|한자=玄圃洑 水路 및 重建不忘碑
 
|주소=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 산2번지 외 3필, 주월리 476
 
|주소=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 산2번지 외 3필, 주월리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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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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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1736년에 김원보가 가뭄과 홍수로 고통을 받던 동계면 현포리 주민들을 위해서 만든 약 2.6km의 수로이다. 김원보와 마을 주민들이 협동하여 쌓은 이 수로로 인하여 주변에 드넓은 육로가 생겨나고, 마을주민들의 생활도 윤택해졌다고 한다. 이에 마을주민들은 1792년에 자신들을 도와준 김원보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에서 수로 암벽 위에 불망비를 세웠고, 조정에서는 김원보의 공을 인정하여 가선대부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종하였다.  
+
현포보 수로는 조선 후기 순창 현포에 살던 김원보(金元寶)의 제안으로 영조 12년(1736)에 조성되었다. 보(洑)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고, 수로(水路)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중건불망비는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6년(1792)에 세웠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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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순창 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이 넘쳐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아랫들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매년 흉작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중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설치할 것을 일러 주었고,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초고====
 
현포보 수로와 중건 불망비는 조선후기 김원보가 조성한 보(洑)와 수로(水路) 및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는 시혜비(施惠碑)이며,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와 주월리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 순창의 현포 일대 들은 상평[윗들]과 하평[아랫들]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상평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이 넘쳐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고 하평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농민들이 매년 거듭되는 흉작을 면치 못하고 고통 받았다. 순창 현포에 살고 있던 김원보(金元寶)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洑)를 설치할 것을 일러주었고, 1736년(영조 12)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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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 이를 알고 영조 23년(1747)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1747년(영조 23)에 김원봉을 종9품 능참봉(陵參奉)의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1792년(정조 16)에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시혜비를 세웠다. 이에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참판(工曹參判)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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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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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onpobo Irrigation Channel and Stele for Remembrance of Its Construction'''???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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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rrigation channel in Hyeonpo was built in 1736 upon the initiative of the local resident Kim Won-bo. In 1792, a stele was erected by the locals to commemorate and express their gratitude for his virtuous deed.
현포보 수로는 조선 후기 순창 현포에 살던 김원보(金元寶)의 제안으로 영조 12년(1736)에 조성되었다.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고, 수로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중건불망비는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6년(1792)에 세웠다.
 
 
옛날 순창 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이 넘쳐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고, 아랫들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농민들이 매년 거듭되는 흉작을 면치 못하고 고통 받았다. 그러던 중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설치할 것을 일러주었고,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영조 23년(1747) 김원봉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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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elds in Hyeonpo had an upper and lower section. The upper section often flooded, resulting in damaged crops, while the lower section lacked sufficient water, resulting in poor yields. It is said that Kim Won-bo was inspired to build an irrigation system after he was visited in his dream by a white-haired old man who instructed him to do so. Together with the other villagers, Kim completed the 2.6 km-long stone irrigation channel. The water was sourced from an artificial reservoir created by blocking the flow of a stream.
  
====자문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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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747, after his deeds were made known to the royal court, Kim Won-bo was offered an official post, but he refused it. He was posthumously bestowed with the position of vice minister of public works in recognition of his achievement.
# 분야별 자문위원 1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고 →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흉작을 면치 못하고 고통 받았다. → 흉작을 면치 못하였다.
 
#*김원봉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 '''뒤에 개별안내판이 있습니다. 이것은 종합안내판이고요. 개별안내판을 보면 중건불망비는 여러 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종합안내판인 이 곳의 내용은 오히려 김원보에 관한 이야기가 집중되고, 개별안내판에는 전체 비석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重建”이라 하였으므로 처음 세운 비석이 있었고, 다시 세운 비석이 있는 것인데, 이 안내문에는 “중건”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현장 확인을 통해 보다 정확한 내용 기술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니면 “개별안내판”과 “종합안내판”이 바뀐 건가요?'''
 
# 분야별 자문위원 2
 
#* 현포보 수로는 현포 일대의 들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시설이다.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둑 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고, 수로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옛날 순창 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 이 넘쳐 농작물에 피해를 주었고, 아랫들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농민들이 매년 거듭되는 흉작을 면치 못하고 고통받았다. <br/>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순창에 살던 김언립(金彦立)이 보를 처음 만들었다. 이후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중건할 것을 일러주었고,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br/>
 
조정에서 이를 알고 영조 23년(1747)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정조 16년(1792)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이후 김세곤(金世)이 다시 증축하였고, 1912년도 다시 증축하였다.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수정사항 없음.
 
  
====2차 수정====
+
===영문 해설 내용===
현포보 수로는 조선 후기 순창 현포에 살던 김원보(金元寶)의 제안으로 영조 12년(1736)에 조성되었다. 보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고, 수로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중건불망비는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6년(1792)에 세웠다.
+
현포보 수로는 현포에 살던 김원보의 제안으로 1736년에 조성되었고, 1792년 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불망비를 세웠다.  
 
옛날 순창 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이 넘쳐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아랫들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매년 흉작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중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설치할 것을 일러주었고,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영조 23년(1747)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문맥요소'''==
 
===Nodes===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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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냇물이 넘쳐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반대로 아랫들은 관개 시설이 없어 매년 흉작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중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설치할 것을 일러주었다.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현포 지역에서 흐르는 냇물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그 물로 인근에 물을 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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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 이를 알고 1747년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그는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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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시도기념물]]
 
[[분류:시도기념물]]
 
[[분류: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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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관개시설]]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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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영문집필]]

2022년 7월 4일 (월) 09:55 기준 최신판

현포보 수로 및 중건불망비
Hyeonpobo Irrigation Channel and Stele for Remembrance of Its Construction
현포보수로및중건불망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현포보 수로 및 중건불망비
영문명칭 Hyeonpobo Irrigation Channel and Stele for Remembrance of Its Construction
한자 玄圃洑 水路 및 重建不忘碑
주소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 산2번지 외 3필, 주월리 476
지정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제82호
지정일 1992년 6월 20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현포보수로및중건불망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현포보 수로는 조선 후기 순창 현포에 살던 김원보(金元寶)의 제안으로 영조 12년(1736)에 조성되었다. 보(洑)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두는 곳이고, 수로(水路)는 물이 지나가는 통로이다. 중건불망비는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6년(1792)에 세웠다.

옛날 순창 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소나기가 내려도 냇물이 넘쳐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아랫들 역시 관개 시설이 없어 매년 흉작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중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설치할 것을 일러 주었고,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영조 23년(1747)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수로의 암벽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영문

Hyeonpobo Irrigation Channel and Stele for Remembrance of Its Construction???

This irrigation channel in Hyeonpo was built in 1736 upon the initiative of the local resident Kim Won-bo. In 1792, a stele was erected by the locals to commemorate and express their gratitude for his virtuous deed.

The fields in Hyeonpo had an upper and lower section. The upper section often flooded, resulting in damaged crops, while the lower section lacked sufficient water, resulting in poor yields. It is said that Kim Won-bo was inspired to build an irrigation system after he was visited in his dream by a white-haired old man who instructed him to do so. Together with the other villagers, Kim completed the 2.6 km-long stone irrigation channel. The water was sourced from an artificial reservoir created by blocking the flow of a stream.

In 1747, after his deeds were made known to the royal court, Kim Won-bo was offered an official post, but he refused it. He was posthumously bestowed with the position of vice minister of public works in recognition of his achievement.

영문 해설 내용

현포보 수로는 현포에 살던 김원보의 제안으로 1736년에 조성되었고, 1792년 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불망비를 세웠다.

현포 일대의 들은 윗들과 아랫들으로 나뉘어 있었다. 윗들은 냇물이 넘쳐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고, 반대로 아랫들은 관개 시설이 없어 매년 흉작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중 김원보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보를 설치할 것을 일러주었다. 김원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석축을 쌓아 길이가 약 2.6km에 이르는 보를 완성하였다. 현포 지역에서 흐르는 냇물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그 물로 인근에 물을 댄 것이다.

조정에서 이를 알고 1747년 김원보에게 벼슬을 내렸으나, 그는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김원보의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화강암으로 된 비석을 세웠다. 조정에서도 김원보의 공로를 인정하여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