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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전 - 정전(운한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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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어진은 1908년 제사를 간소화하며 서울로 옮겼으나 6・25전쟁의 와중에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은 2008년에 다시 그린 어진을 봉안하였으며, 현판도 새로 제작하여 걸었다.  
 
원래 어진은 1908년 제사를 간소화하며 서울로 옮겼으나 6・25전쟁의 와중에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은 2008년에 다시 그린 어진을 봉안하였으며, 현판도 새로 제작하여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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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수정===
정조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실내에는 어진을 모신 합자(閤子)를 중앙에 두고 좌우에는 익실(翼室)을 마련해서 정조가 직접 편찬한 책들과 제사 때 쓰는 물건을 나누어 봉안했었다. 어진을 모시는 경우 주변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당가(唐家)를 설치하기도 하지만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정조의 뜻을 받들어 여기서는 소박한 합자를 설치했다. 대신 학문을 좋아하던 왕을 기리기 위해 익실에 서책을 봉안했는데, 이런 사례는 다른 영전에서는 보기 어렵다. 어진은 대본(大本)과 소본(小本) 둘을 모셨다. 순조는 1804년 처음 화령전에 와서 작헌례를 치르고 나서 당호를 운한각(雲漢閣)이라 짓고 직접 현판 글씨를 써서 걸었다. 운한은 은하수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많은 서적을 두고 이를 탐구하는 학자를 지칭하여 운한소회(雲漢昭回)라고 표현했으며 정조를 상징하는 말로도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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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한각은 정조 어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건물로, 당대 최고급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약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성했다. 중앙에는 정조 어진을 모신 합자(閤子)를 두고, 좌우에 딸려 있는 익실(翼室)정조가 편찬한 책과 제사에 쓰는 물품을 보관했다. 합자와 익실 바닥에는 온돌을 설치하여 5일마다 불을 넣어 습기를 제거했다. 고종 9년(1872) 바닥을 마루로 개조하였지만 아궁이 흔적이 남아있다.  
  
건물은 제사에 알맞으면서 격식을 잘 갖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구름무늬로 치장한 계단을 갖춘 높은 월대에 정교하게 다듬은 초석을 두어 왕실 사당의 격조를 드러내고 있으며, 안정감 있는 비례를 보이는 기둥 배열, 세밀하게 치장된 창호와 서까래의 미세한 곡선 등이 조선조 목조건축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준다. 본래는 합자와 좌우 익실 바닥에 온돌을 설치해서 습기를 제거하도록 했지만 1872년(고종9) 나라에서 어진을 모신 건물 온돌을 모두 마루로 변경하는 조처를 취하면서 이 건물도 온돌에서 마루로 고쳐졌다. 다만, 기단면에 있던 세 군데 아궁이는 그대로 남겨놓아 흔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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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는 1804년(순조 4) 처음 화령전에 와서 작헌례를 치르고 운한각(雲漢閣)이라는 건물이름을 짓고 현판을 써서 내려 줬다. ‘운한’은 많은 서적을 탐구한 학자를 가리키는 말로 정조를 상징한다.  
  
실내 합자에 모셨던 정조 어진은 1908년 제사를 간소하게 하려는 방침에 따라 서울로 모셔갔다가 6.25 전쟁 와중에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은 2006년에 새로 그린 영정을 모셔놓았다. 건물 현판도 순조 어필은 사라지고 없고 지금은 2008년에 새로 만든 것을 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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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한각에 모셨던 정조 어진은 1908년 제사를 간소하게 하려는 방침에 따라 서울로 옮겼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현재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것이다.   
 
 
*'''연혁''' - 1801년(순조원년) 창건 / 1872년(고종9) 온돌을 마루고 교체 / 1946년 및 1966년 수리
 
*'''규모''' - 정면 5칸, 측면 4칸
 
*'''구조''' - 겹처마 이익공 팔작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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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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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al portraits of King Jeongjo were moved to Hanyang in 1908, but were unfortunately lost in a fire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portrait currently housed in this hall was newly painted in 2006.
 
The original portraits of King Jeongjo were moved to Hanyang in 1908, but were unfortunately lost in a fire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portrait currently housed in this hall was newly painted in 2006.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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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수정===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의 정전이다. 왕이 죽은 이듬해인 1801년에 지어졌다. 운한각의 가운데는 초상화를 모시고, 왼편과 오른편에는 정조가 직접 지은 책들과 왕이 사용하던 물건 등을 나누어 보관했었다. 어진을 모시는 경우, 당가 등을 설치해서 화려하게 꾸미기도 하지만, 운한각은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정조의 뜻을 받들어 소박하게 지었다. 바닥에는 전통적인 난방 방식인 온돌이 있었지만 1872년 마루로 교체되었다. 다만 건물 밖 후면과 좌우 측면에는 온돌에 사용되던 아궁이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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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angak is the main hall of Hwaryeongjeon Shrine where the portrait of King Jeongjo is enshrined. The king’s portraits were located at the center. Books written by King Jeongjo and other items personally used by him were located on the left and right. Such shrines for royal portraits were usually splendidly decorated with a wooden canopy, but this hall was built in a simple style reflecting King Jeongjo’s emphasis on simple living.  
  
운한각에 모셔졌던 정조 어진은 1908년 서울로 다시 옮겨졌다가 한국전쟁 도중에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현재 운한각에는 2006년에 새로 그린 영정을 모셔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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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this hall was built with a traditional Korean under-floor heating system called ''ondol'', but it was replaced with a wooden floor in 1872. The fireplaces which were once used for the heating system can still be found at the back and sides of the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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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al two portraits of King Jeongjo were moved to the capital in 1908, but were unfortunately lost in a fire in 1954. The portrait currently housed in this hall was newly painted in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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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임금의 초상화를 모신 건물이다. 왕이 죽은 이듬해인 1801년 지어졌다. 실내 중앙 후방에 초상화를 모신 감실이 있고 왼편과 오른편에는 왕이 지은 서적과 왕이 사용하던 물건 등을 보관하는 부속실을 두었지만 지금은 감실만 남아있다. 감실 바닥과 좌우 부속실은 바닥에 전통적인 난방 방식인 온돌시설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무로 바뀌었다. 다만, 건물 밖 후면과 좌우 측면에는 과거 온돌이 있을 때 불을 넣던 아궁이 시설이 남아있다. 이 건물의 돌로 된 단이나 초석, 나무로 된 기둥과 창문에는 궁궐을 짓던 최고 수준의 건축기술이 잘 남아있다. 건물에 모셨던 초상화 그림은 20세기 초에 서울로 옮겼다가 화재로 불에 타서 없어지고 지금 모신 그림은 2006년에 새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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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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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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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수원시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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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수원 화성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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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18 영문집필]]

2020년 6월 10일 (수) 09:38 기준 최신판


운한각 雲漢閣
"화령전", 문화재 검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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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 1801년(순조 1년) 창건
  • 1946년/1966년 수리

정조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실내에는 합자(閤子)와 익실(翼室)로 구성하였다. 어진을 모신 합자를 중앙에 두고 좌우 익실에는 정조가 편찬한 책과, 제사에 쓰는 물품을 나누어 보관했다. 순조는 1804년(순조 4) 처음 화령전에 와서 작헌례를 치르고 운한각(雲漢閣)이라 이름을 짓고 직접 글씨를 써서 현판을 걸게 했다. 운한은 많은 서적을 두고 이를 탐구하는 학자를 지칭하는 운한소회(雲漢昭回)에서 비롯된 표현이며, 정조를 상징하는 말로도 쓰였다.

건물은 조선후기 목조건축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준다. 구름무늬로 치장한 계단을 갖춘 높은 월대에 정교하게 다듬은 초석을 두어 왕실 사당의 격조를 드러냈다. 안정감 있는 비례를 보이는 기둥 배열, 세밀하게 치장된 창호, 서까래의 미세한 곡선 등이 주목된다. 합자와 좌우 익실 바닥은 온돌을 깔아 습기를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1872년(고종 9) 나라에서 어진을 모신 건물 바닥을 모두 마루로 개조하면서 운한각도 마루로 고쳤는데, 아궁이 흔적만 기단에 남아있다.

원래 어진은 1908년 제사를 간소화하며 서울로 옮겼으나 6・25전쟁의 와중에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은 2008년에 다시 그린 어진을 봉안하였으며, 현판도 새로 제작하여 걸었다.

국문 수정

운한각은 정조 어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건물로, 당대 최고급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약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성했다. 중앙에는 정조 어진을 모신 합자(閤子)를 두고, 좌우에 딸려 있는 익실(翼室)에 정조가 편찬한 책과 제사에 쓰는 물품을 보관했다. 합자와 익실 바닥에는 온돌을 설치하여 5일마다 불을 넣어 습기를 제거했다. 고종 9년(1872) 바닥을 마루로 개조하였지만 아궁이 흔적이 남아있다.

순조는 1804년(순조 4) 처음 화령전에 와서 작헌례를 치르고 운한각(雲漢閣)이라는 건물이름을 짓고 현판을 써서 내려 줬다. ‘운한’은 많은 서적을 탐구한 학자를 가리키는 말로 정조를 상징한다.

운한각에 모셨던 정조 어진은 1908년 제사를 간소하게 하려는 방침에 따라 서울로 옮겼으나 1954년 부산 피난처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현재 봉안되어 있는 어진은 2004년에 다시 그린 것이다.

영문

Unhangak Hall

Unhangak is the main hall of Hwaryeongjeon Shrine where the portrait of King Jeongjo is enshrined. It was built in 1801, the year after the king’s death. At the center of this hall were the king’s portraits, and on the left and right were books written by and other items used by the king himself. Such shrines for royal portraits were usually splendidly decorated with a wooden canopy, but this hall was built in a simple style reflecting King Jeongjo's emphasis on simple living. Originally, this hall was built with a traditional Korean under-floor heating system called ondol, but it was replaced with a wooden floor in 1872. On the back and each side of the building remain fireplaces which were used for the heating system.

The original portraits of King Jeongjo were moved to Hanyang in 1908, but were unfortunately lost in a fire during the Korean War (1950-1953). The portrait currently housed in this hall was newly painted in 2006.

영문 수정

Unhangak is the main hall of Hwaryeongjeon Shrine where the portrait of King Jeongjo is enshrined. The king’s portraits were located at the center. Books written by King Jeongjo and other items personally used by him were located on the left and right. Such shrines for royal portraits were usually splendidly decorated with a wooden canopy, but this hall was built in a simple style reflecting King Jeongjo’s emphasis on simple living.

Originally, this hall was built with a traditional Korean under-floor heating system called ondol, but it was replaced with a wooden floor in 1872. The fireplaces which were once used for the heating system can still be found at the back and sides of the building.

The original two portraits of King Jeongjo were moved to the capital in 1908, but were unfortunately lost in a fire in 1954. The portrait currently housed in this hall was newly painted in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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