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자(창원 진해 웅천읍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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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안내판
 
{{개별안내판
|사진=창원진해웅천읍성.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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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800150000 창원 진해 웅천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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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창원 진해 웅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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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Moat
|한자=昌原 鎭海 熊川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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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창원 진해 웅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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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ref>(한자 보시기 힘들까봐 참고용 ^^;) 해자(垓子)는 성벽 주변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 하천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여 성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방어시설의 하나로서 아주 이른 시기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방어시설이었다.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해자와 관련된 용어는 『조선왕조실록』에 해자(垓字), 갱감(坑坎), 호지(濠池), 참호(塹濠), 황지(隍池), 해자(海子), 지호(池壕), 해자(垓子), 호(壕) 등이 사용되고 있고 조선 후기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해자(垓子)라고 기록되어 있다. (후략)</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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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해자(垓子)는 성벽 주변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 하천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여 성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방어시설의 하나로서 아주 이른 시기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방어시설이었다.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해자와 관련된 용어는 『朝鮮王朝實錄』에 垓字, 坑坎, 濠池, 塹濠, 隍池, 海子, 池壕, 垓子, 壕등이 사용되고 있고 조선 후기에 편찬된 『增補文獻備考』에는 垓子라고 기록되어 있다. 웅천읍성에서는 길이 300m의 동벽과 남벽 해자가 확인되었다. 웅천읍성의 해자는 조선 세종 16년 (1434) 초축이 시작된 이후 총 3번 이상에 걸친 수·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 및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 일부를 폐기하고 새로이 해자를 축조하였다. 웅천읍성 체성부와 해자의 이격거리는 동북벽이 12m, 동문지 옹성 주변 7.2~8.1m, 동남벽은 8m, 남벽 7.5m 이다. 해자의 폭은 남벽 해자는 상부 폭 4.3m, 하부 폭 4m으로서 최대 깊이 2.5m 이며, 동남벽 해자는 상부 폭 4.2~4.6m, 하부 폭 4m, 최대 깊이 3m, 동북벽 해자는 상부 폭 7~7.6m, 하부 6~6.5m, 최대 깊이 3.5m 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단면 U자형을 이룬다. 웅천읍성 해자의 석축 축조수법은 허튼층쌓기를 실시하였으며, 또한 축조 해자 바닥에는 전체적으로 돌이 깔려 있고 그 사이사이로 목익을 설치한 반면에 증개축된 해자인 남쪽 구간에서는 해자벽에 붙어 약 1.2m 간격으로만 나오고 그 안쪽으로 목익이 확인된다. 또한 동문지 옹성 밖 해자 내부에서 조교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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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읍성은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에 해자를 두어 적으로부터 성을 보호하였다. 해자 벽은 크기가 다른 돌을 줄을 맞추지 않고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바닥에는 돌을 깔고 적이 건너지 못하도록 뾰족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세웠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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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성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12m 간격을 두고 조성되었는데 현재 웅천-제포 간 간선도로와 인접해 있다. 동남쪽 성벽 해자는 위쪽 폭 4.2~4.6m, 아래쪽 폭 4m, 최대 깊이 3m이며, 동북쪽 성벽 해자는 위쪽 폭 7~7.6m, 아래쪽 폭 6~6.5m, 최대 깊이 3.5m이다. 남쪽 성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8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폭은 위쪽 4.3m, 아래쪽 4m, 최대 깊이는 2.5m이다.
====초고====
 
해자(垓子)는 주황(周隍), 구지(溝池), 외호(外壕), 호성하(護城河)로 지칭된다.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해자와 관련된 용어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해자(垓字), 갱감(坑坎), 호지(濠池), 참호(塹濠), 황지(隍池), 해자(海子), 지호(池壕), 해자(垓子), 호(壕) 등이 사용되고 있고 조선 후기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해자(垓子)라는 기록이 보인다. 주로 성곽과 고분 등에서 발견되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성곽의 외곽에 해자를 방어시설로 활용하여 성곽을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웅천읍성에서는 길이 300m의 동벽과 남벽 해자가 확인되었다. 웅천읍성의 해자는 세종 16년(1434) 축조가 시작된 이후 3번 이상에 걸친 수·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 및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 일부를 폐기하고 새로이 해자를 축조하였다. 웅천읍성 체성부와 해자의 이격거리는 동북벽이 12m, 동문지 옹성 주변 7.2~8.1m, 동남벽은 8m, 남벽 7.5m 이다. 해자의 폭은 남벽 해자는 상부 폭 4.3m, 하부 폭 4m으로서 최대 깊이 2.5m 이며, 동남벽 해자는 상부 폭 4.2~4.6m, 하부 폭 4m, 최대 깊이 3m, 동북벽 해자는 상부 폭 7~7.6m, 하부 6~6.5m, 최대 깊이 3.5m 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단면 U자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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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대 읍성을 처음 지은 이후 모두 3번 이상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과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를 일부 없애고 새로 만들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웅천읍성 해자의 석축 축조수법은 허튼층쌓기를 실시하였으며, 해자 바닥에는 돌이 깔려 있고 그 사이사이로 목익을 설치하였으며 증개축된 해자인 남쪽 구간에서는 해자벽에 붙어 약 1.2m 간격으로 나오고 그 안쪽으로 목익이 확인된다. 또한 동문지 옹성 밖 해자 내부에서 조교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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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垓子): 성벽 밖에 도랑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막는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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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성(甕城):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圓形)이나 방형(方形)으로 쌓은 작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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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雉城):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였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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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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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at (Uncheoneupseong Walled Town, Cha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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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at is a ditch dug around a fortress and filled with water to provide an additional line of defense from the enemy.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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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cheoneupseong Walled Town had moats along the eastern and the southern sections of its wall. The walls of the moat are made of stones of different sizes arranged in irregular patterns without straight lines. The bottom of the moat was also laid with stones and had wooden spikes densely installed across its surface to prevent the enemy from crossing the moat. Over time, the walled town underwent more than three expansions and reconstructions, and it is presumed that when bastions and semi-circular walls were added, some parts of the moat were removed and built a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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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at along the eastern side of the walled town was built 7-12 m away from the wall. The southeastern section measures 3 m in depth, 4.2-4.6 m in width at the top, and 4 m in width at the bottom, while the northeastern measures 3.5 m in depth, 7-7.6 m in width at the top, and 6-6.5 m in width at the bottom. The moat along the southern side was built 7-8 m away from the wall. It measures 2.5 m in depth, 4.3 m in width at the top, and 4 m in width at the bot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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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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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는 성벽 밖에 도랑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막는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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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읍성은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에 해자를 두었다. 해자의 벽은 크기가 다른 돌들을 줄을 맞추지 않고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해자 바닥에는 돌을 깔고 적이 건너지 못하도록 뾰족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세웠다. 읍성을 처음 지은 이후 모두 3번 이상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과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를 일부 없애고 새로 만들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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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성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12m 간격을 두고 조성되었다. 동남쪽 성벽 해자는 깊이 3m, 위쪽 폭 4.2-4.6m, 아래쪽 폭 4m 이고, 동북쪽 성벽 해자는 깊이 3.5m, 위쪽 폭 7-7.6m, 아래쪽 폭 6-6.5m이다. 남쪽 성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8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깊이는 2.5m, 폭은 위쪽 4.3m, 아래쪽 4m이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 해자(垓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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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자(垓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8745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8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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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자(垓子),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7380&cid=40942&categoryId=31746
* 해자(垓子),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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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재헌, 김갑진, 「진해 웅천읍성 발굴조사 개보」, 『한국성곽학회』, 2008.11, 73~117쪽.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68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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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갑, 「진해 웅천읍성의 고고학적 검토  :  체성부 축조수법과 구조를 중심으로」, 『한국고고미술연구소』 Vol.17, 2011, 599~6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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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국문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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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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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1 영문집필]]

2021년 9월 27일 (월) 01:00 기준 최신판

해자 垓子
Moat
Goto.png 종합안내판: 창원 진해 웅천읍성



해설문

국문

웅천읍성은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에 해자를 두어 적으로부터 성을 보호하였다. 해자 벽은 크기가 다른 돌을 줄을 맞추지 않고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바닥에는 돌을 깔고 적이 건너지 못하도록 뾰족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세웠다.

동쪽 성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12m 간격을 두고 조성되었는데 현재 웅천-제포 간 간선도로와 인접해 있다. 동남쪽 성벽 해자는 위쪽 폭 4.2~4.6m, 아래쪽 폭 4m, 최대 깊이 3m이며, 동북쪽 성벽 해자는 위쪽 폭 7~7.6m, 아래쪽 폭 6~6.5m, 최대 깊이 3.5m이다. 남쪽 성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8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폭은 위쪽 4.3m, 아래쪽 4m, 최대 깊이는 2.5m이다.

세종 대 읍성을 처음 지은 이후 모두 3번 이상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과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를 일부 없애고 새로 만들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 해자(垓子): 성벽 밖에 도랑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막는 시설.
  • 옹성(甕城):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圓形)이나 방형(方形)으로 쌓은 작은 성.
  • 치성(雉城):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였다.

영문

Moat (Uncheoneupseong Walled Town, Changwon)

A moat is a ditch dug around a fortress and filled with water to provide an additional line of defense from the enemy.

Ungcheoneupseong Walled Town had moats along the eastern and the southern sections of its wall. The walls of the moat are made of stones of different sizes arranged in irregular patterns without straight lines. The bottom of the moat was also laid with stones and had wooden spikes densely installed across its surface to prevent the enemy from crossing the moat. Over time, the walled town underwent more than three expansions and reconstructions, and it is presumed that when bastions and semi-circular walls were added, some parts of the moat were removed and built anew.

The moat along the eastern side of the walled town was built 7-12 m away from the wall. The southeastern section measures 3 m in depth, 4.2-4.6 m in width at the top, and 4 m in width at the bottom, while the northeastern measures 3.5 m in depth, 7-7.6 m in width at the top, and 6-6.5 m in width at the bottom. The moat along the southern side was built 7-8 m away from the wall. It measures 2.5 m in depth, 4.3 m in width at the top, and 4 m in width at the bottom.

영문 해설 내용

해자는 성벽 밖에 도랑을 둘러 파고 물을 채워 적의 침입을 막는 시설이다.

웅천읍성은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에 해자를 두었다. 해자의 벽은 크기가 다른 돌들을 줄을 맞추지 않고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해자 바닥에는 돌을 깔고 적이 건너지 못하도록 뾰족한 나무 말뚝을 촘촘히 세웠다. 읍성을 처음 지은 이후 모두 3번 이상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졌으며, 옹성과 치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해자를 일부 없애고 새로 만들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동쪽 성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12m 간격을 두고 조성되었다. 동남쪽 성벽 해자는 깊이 3m, 위쪽 폭 4.2-4.6m, 아래쪽 폭 4m 이고, 동북쪽 성벽 해자는 깊이 3.5m, 위쪽 폭 7-7.6m, 아래쪽 폭 6-6.5m이다. 남쪽 성벽 해자는 성벽 밖으로 약 7-8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깊이는 2.5m, 폭은 위쪽 4.3m, 아래쪽 4m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