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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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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이 누각은 1412년(태종 12)에 당시 이안(利安, ‘안의’의 옛 이름) 현감이던 전우(全遇, 생몰 연대 미상)가 건립하였는데, 당시의 이름은 선화루(宣化樓)였다. 그 후, 1425년(세종 7)에 김홍의(金洪毅)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1494년(성종 25)에 안의현감이던 정여창(鄭汝昌)선생이 중건하면서 이름을 광풍루(光風樓)로 바꾸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불타는 등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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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루는 태종 12년(1412) 이안현(현재 안의면)의 현감 전우(全遇)가 창건하면서 선화루(宣化樓)라 불렀다. 세종 7년(1425) 김홍의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성종 25년(1494) 일두 정여창이 크게 지으면서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의미를 담아 광풍루라 부르게 되었다.  
  
광풍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기둥의 주춧돌은 둥글게 깎아 만들었다. 지붕의 경사면에 처마를 하나 덧댄 팔작지붕을 연출하였으나, 처마 돌출이 작기 때문에 호방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소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함양 읍내의 학사루(學士樓)와 유사한 건축 양식이다. 광풍루는 금호강을 앞으로 하고 안의 읍내를 뒤로 하면서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 강은 하천 개발로 그 모습을 잃어버렸고, 후면에 상가와 민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겼을 풍류를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누각 위에 걸린 옛 시인의 글귀만이 옛 금호강변의 아름다운 ‘빛과 바람[光風]’의 느낌을 전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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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24년(1601) 심종험이 복원하였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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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건물은 숙종 9년(1683) 현감 장세남이 중건하였는데 이때 중건기를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  
====초고====
 
이 누각은 1412년 안의의 옛 지명인 이안(利安)의 현감이 지은 것으로서 그 당시에는 선화루(宣化樓)라 하였다. 그 뒤 1425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494년에 안의현감이던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이 중수하여 이름도 광풍루(光風樓)로 고쳐 불렀다.  
 
  
광풍(光風)은 제월(霽月)과 서로 짝을 이루는데, 이것은 중국 북송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주돈이의 인품을 묘사하여 ‘광풍제월’이라 하였는데, 광풍은 ‘맑은 바람’을, 제월은 ‘비 갠 달빛’을 의미한다. 정여창은 같은 해 근처에 제월당(霽月堂)이라는 정자를 지어 광풍루와 서로 짝을 이루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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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기둥의 주춧돌은 둥글게 깎아 만들었으며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소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유형 문화제 제 90호인 학사루와 유사한 건축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유형 문화제 제258호 함화루 등과 함께 함양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광풍루는 이후 정유재란 때에 소실되었는데 여러 차례 중수를 하였으며, 1980년에 단청을 정비하였다. 2014년에는 문화재 훼손 등의 이유로 뒤편으로 10m 정도 이건한 후 주변을 정비하였으며 2016년에는 단청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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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및 도시 개발로 옛 풍경을 많이 잃어버렸으나 누각에 걸린 선현들의 시편에서 금호강변의 아름다운 풍치를 느낄 수 있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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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제월(光風霽月): 비가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을 뜻하는 것으로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인품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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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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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angpungnu Pavilion in Anui-myeon, Hamyang'''
  
=='''문맥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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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vilion was established in 1412 by Jeon U, who was the magistrate of the area at the time. The pavilion was named Seonhwaru, meaning “the pavilion of virtuous governance.” In 1494, the then local magistrate Jeong Yeo-chang (1450-1504) renovated the pavilion and renamed it Gwangpungnu, meaning “the pavilion of fresh breeze that blows after the rain,” which is a metaphor for a generous, cheerful, and unreserved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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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vilion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7, rebuilt in 1601, and renovated in 1683. In 2014, the pavilion was moved 10 m further away from the road, because vibrations from traffic were threatening the pavilion’s structural integ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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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vilion features a simple design without abundant decorations. It is regarded as one of the three great pavilions of Hamyang together with Haksaru Pavilion (Gyeongsa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90) and Hamhwaru Pavilion (Gyeongsa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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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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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루는 1412년 당시 현감이었던 전우(全遇)가 처음 지은 누각이다. 처음 지어질 당시의 이름은 “어진 정치를 베푸는 누각”이라는 의미의 선화루였다. 1494년 현감 정여창(1450-1504)이 중수하면서 “비가 갠 뒤 맑게 부는 바람의 누각”이라는 뜻의 광풍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광풍이란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는 훌륭한 인품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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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1년에 다시 지었으며, 1683년에 중건하였다. 원래의 위치가 도로에 인접하여 흔들림 등 훼손 요인이 많아서 2014년에 뒤쪽으로 10m 정도 옮겨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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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학사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 함화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와 함께 함양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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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시도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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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2020 국문집필]] [[분류: 2020 국문초안지원사업]]

2021년 2월 5일 (금) 16:34 기준 최신판

함양 안의 광풍루
Gwangpungnu Pavilion in Anui-myeon, Hamyang
함양 안의 광풍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안의 광풍루
영문명칭 Gwangpungnu Pavilion in Anui-myeon, Hamyang
한자 咸陽 安義 光風樓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강변로 303 (금천리)
국가유산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지정(등록)일 1974년 2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함양 안의 광풍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광풍루는 태종 12년(1412) 이안현(현재 안의면)의 현감 전우(全遇)가 창건하면서 선화루(宣化樓)라 불렀다. 세종 7년(1425) 김홍의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성종 25년(1494) 일두 정여창이 크게 지으면서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의미를 담아 광풍루라 부르게 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24년(1601) 심종험이 복원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숙종 9년(1683) 현감 장세남이 중건하였는데 이때 중건기를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기둥의 주춧돌은 둥글게 깎아 만들었으며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소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유형 문화제 제 90호인 학사루와 유사한 건축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유형 문화제 제258호 함화루 등과 함께 함양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하천 및 도시 개발로 옛 풍경을 많이 잃어버렸으나 누각에 걸린 선현들의 시편에서 금호강변의 아름다운 풍치를 느낄 수 있다.


  • 광풍제월(光風霽月): 비가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을 뜻하는 것으로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인품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한다.

영문

Gwangpungnu Pavilion in Anui-myeon, Hamyang

This pavilion was established in 1412 by Jeon U, who was the magistrate of the area at the time. The pavilion was named Seonhwaru, meaning “the pavilion of virtuous governance.” In 1494, the then local magistrate Jeong Yeo-chang (1450-1504) renovated the pavilion and renamed it Gwangpungnu, meaning “the pavilion of fresh breeze that blows after the rain,” which is a metaphor for a generous, cheerful, and unreserved person.

The pavilion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7, rebuilt in 1601, and renovated in 1683. In 2014, the pavilion was moved 10 m further away from the road, because vibrations from traffic were threatening the pavilion’s structural integrity.

The pavilion features a simple design without abundant decorations. It is regarded as one of the three great pavilions of Hamyang together with Haksaru Pavilion (Gyeongsa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90) and Hamhwaru Pavilion (Gyeongsa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258).

영문 해설 내용

광풍루는 1412년 당시 현감이었던 전우(全遇)가 처음 지은 누각이다. 처음 지어질 당시의 이름은 “어진 정치를 베푸는 누각”이라는 의미의 선화루였다. 1494년 현감 정여창(1450-1504)이 중수하면서 “비가 갠 뒤 맑게 부는 바람의 누각”이라는 뜻의 광풍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광풍이란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는 훌륭한 인품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1년에 다시 지었으며, 1683년에 중건하였다. 원래의 위치가 도로에 인접하여 흔들림 등 훼손 요인이 많아서 2014년에 뒤쪽으로 10m 정도 옮겨 지었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학사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0호), 함화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와 함께 함양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