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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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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간원은 고려시대의 문신 문극겸(1122-1189)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 왼쪽에는 문극겸의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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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의종(재위 1146-1170)은 방탕한 생활을 하고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문극겸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왕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좌절한 문극겸은 사직하고 고향인 나주로 향하였고, 도중에 공주 유구역(지금의 유구리 지역)을 지날 때 고향으로 내려가는 심정을 시로 지어 유구역 건물 벽에 써놓았다. 고간원이라는 이름은 “(말고삐를) 붙들고 간언하는 사당”이라는 뜻으로, 문극겸의 일화를 중국 고대에 왕에게 간언하던 충신들의 고사에 빗대어 지은 것이다. 명종(재위 1170-1197)이 즉위한 뒤 문극겸은 여러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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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간원은 조선시대에 태종(재위 1400-1418)의 명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1792년 홍수로 무너진 후 1907년에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14년에 완공되었다. 1984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후 사당 앞에 재실, 영당, 신도비 등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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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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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간원, 남평문씨 대종회 홈페이지. http://moonsi.cafe24.com/jaesil/11gogan.htm
  
  

2023년 7월 21일 (금) 14:45 판


고간원지
고간원지, 두피디아.
대표명칭 고간원지
한자 叩諫院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 산32-1번지 외
국가유산 종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51호
지정(등록)일 1984년 7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1,471㎡
웹사이트 고간원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간원지는 고려 시대 의종·명종 대의 충신 문극겸(文克謙, 1122-1189) 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그 일대에는 고간원을 비롯하여 문숙공신도비, 재실, 묘소 등이 있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지만 조선 태종의 명으로 고간원을 세웠다고 한다. 1792년(정조 16) 홍수로 인해 무너진 건물을 1907년에 다시 지었고, 1914년에 완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4년 7월 26일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문극겸 선생은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의종(毅宗)과 부정부패를 일삼는 신하들을 바로잡기 위해 간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고향인 나주목 남평현현 전남 나주 으로 낙향하던 중 공주의 유구역을 지날 때 고향으로 내려가는 마음을 유구역사의 벽에 시로 써놓았고 이후 그 시가 그림으로 그려졌으며 간신거국도(諫臣去國圖)**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 유구읍 추계리에는 선생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 문극겸: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덕병(德柄)으로 고려사 열전에 따르면 효성과 우애가 있고 인자하며 충직한 성품으로 바른 말을 잘하였다고 한다. 1170년(의종 24) 무신의 난이 일어나 대부분의 문신들이 처벌당하였지만 바른 말을 서슴지 않았던 충직함이 인정되어 화를 면하였으며 고위직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다가 1189년(명종 19) 68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으며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 간신거국도: 바른 말을 하는 신하가 서울을 떠나는 그림이라는 뜻.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고간원은 고려시대의 문신 문극겸(1122-1189)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 왼쪽에는 문극겸의 묘소가 있다.

고려 후기 의종(재위 1146-1170)은 방탕한 생활을 하고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문극겸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왕에게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좌절한 문극겸은 사직하고 고향인 나주로 향하였고, 도중에 공주 유구역(지금의 유구리 지역)을 지날 때 고향으로 내려가는 심정을 시로 지어 유구역 건물 벽에 써놓았다. 고간원이라는 이름은 “(말고삐를) 붙들고 간언하는 사당”이라는 뜻으로, 문극겸의 일화를 중국 고대에 왕에게 간언하던 충신들의 고사에 빗대어 지은 것이다. 명종(재위 1170-1197)이 즉위한 뒤 문극겸은 여러 고위직을 역임하였다.

고간원은 조선시대에 태종(재위 1400-1418)의 명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1792년 홍수로 무너진 후 1907년에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14년에 완공되었다. 1984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후 사당 앞에 재실, 영당, 신도비 등이 세워졌다.

참고자료